'전체 글' + 2619

신념과 어른이 된다는 것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4. 9. 16. 08:16 Writer : 김홍덕

고 3 수험생 아들이 대학 수시진학 원서를 쓰는 기간이다. 나의 사회경험으로는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진로를 꿈꾸는 아들, 하지만 꿈을 이루기에 그리 좋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인 나.


원서를 쓸 때가 되어서야 진학 대학 결정에 영향을 주는 시험응시 방식을 자기 맘대로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그게 아니라도 아주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독단적인 결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어제 밤에 이야기를 했다.


신념을 이루는 것은 너의 삶과 연관된 사람들의 생각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단 있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신념을 함께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또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의 의견과 독립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대화와 설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몽주>가 <정도전>을 죽이려 할 때, 정도전이 그것을 받아들이던 장면을 이야기 했다. 그 드라마 안에서 <정도전>은 이렇게 말한다.(일치하진 않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음 세대, 그 세대가 안되면 또 다음 세대에 분명이 그런 나라가 올 것이다.


정말로 신념은 그런 것이다. 정말로 자신의 신념이 맞다면 당대에 이루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세대와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현실은 무시하며 산 방랑자 같이 되는 희생도 자신의 것으로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신념을 가진 삶이다.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의 예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의 가랑이 밑을 기면서 때를 기다린 것과, 그렇게 이룬 삶이 왕비의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유방>과 자신의 차이를 인정하며 얼마든지 자신의 힘으로 그 상황을 바꿀 수 있었지만 수용하는 그 모습, 그게 신념의 단면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하셨다. 그 분의 능력, 바다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신 능력으르 가지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보여주시고자 한 것은 물리적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사람이 변하는 기적을 보여주시고자 하셨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우리가 단 한번 사는 이 삶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면 성공한 것 같지만, 그건 아이의 생각이다.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는 삶은, 행여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를 맞나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이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까지 수용할 수 있는 것이 포함되었을 때 진실된 것이다.


더러 신앙인들이 신앙의 중요성에 매몰되어, 사람의 중요성은 멀리하고 신앙의 순수성 만을 강조하는 것은 신앙을 반만 아는 것이다. 이는 동생이 강간 당했다고 한 부족을 말살한 레위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방법이긴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의 방식은 아니다.


신념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 결국은 바다 속에 사는 고기가 짜지 않는 것과 같이 신념을 지키는 것이다. 세상이 이해하지 않는다고 바닷물의 소금을 축출하거나 바닷물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듯,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신념이 무익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른과의 독립이 아니라 용납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더불어 아직은 어리지만 아들이 이것을 깨달으면 더 좋겠다.


 

'김집사의 뜰 > 복음 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 껍데기 벗기기  (0) 2014.09.26
안타까운 죽음...  (0) 2014.09.26
신앙의 순도  (0) 2014.09.01
내용과 형식의 방향성으로 보는 생명  (0) 2014.08.24
내용과 형식  (0) 2014.08.23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요한일서 1장 5-10절) 어두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15. 17: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이 가지신 사람의 존재 목적, 그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람의 존재 목적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다. 그 하나님의 의가 사람에게 없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존재의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어두움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앞이 안 보인다.’ 라는 말은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자기가 하는 일의 과정과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어둡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삶의 어떤 한 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전반적인 삶의 전부에 대하여 볼 때 많은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어둡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께는 그런 어두움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빛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목적, 즉 빛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셨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임을 고백하는 것에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없는 어두움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어두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어두움도 없으시지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는 어떤 어두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분명히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다. 그 창조는 세상의 어떤 창조와 구별이 된다. 사람의 창조에 대한 말씀에는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분명한 창조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7) - 하나님의 형상 = 이미지(image)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8)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9) -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



즉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로 지으셨다고 하셨다. 이 형상은 하나님의 image라고 영어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사람을 통해서 표현되었다는 의미이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성품과 의와 같은 하나님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어 분명한 빛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빛은 모든 것은 인식하도록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취면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에 대하여 모르던 사람에게 컴퓨터를 알게 하는 빛과 같은 가르침이 있으면 컴퓨터에 대하여 어두운 컴맹에서 벗어나서 아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어두움이 있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살아가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과 같은 행동과 방법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존재 목적을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방법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하기는 한다. 남부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서울이 북쪽에 있고 서울로 가는 것이 분명하다면, 어떤 사거리, 어떤 선택의 순간에도 선택할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울 가는 길에 비친 빛이다. 즉 서울이 북쪽에 있고 내가 그곳에 가야한다는 목적이 있으면 어두움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안다면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 어두움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것이다. 물론 방법론과 형식에 관해서는 고민할 수는 있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결혼이나 직장을 얻는 것이나 다 그 목적 안에서 결정하게 된다. 그 결정의 색깔이나 형식은 달라도 무관하다. 연어가 짝짓기 하는 상대가 달라진다고 태어난 강으로 가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삶의 마디마디에서 어떤 결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쩌나 맘 조리는 것은 삶의 존재 목적을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삶의 모양이 어떠하든 그 목적대로 살게 된다. 개가 태평양 바다 위에 있다고 짖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요한일서 1장 5-10절) 하나님의 빛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14. 15:37 Writer : 김홍덕

앞에서 우리는 요한 사도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하나님과 사람의 사귐이라고 했다. 바로 그 사귐이 빛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빛이라는 것이다.


빛은 인식이다. 빛이 있으면 모든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존재 목적에 맞게 다스릴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기 방이라도 어두울 때 들어가면 늘 사용하던 물건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되지만, 빛이 있으면 책상이든, 선풍기든, 심지어 송곳이나 칼이라도 다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주관자가 되어서 인생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빛을 만나는 것인데, 이 빛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은 내 삶의 내용과 목적과 의로 계시고 사람은 그것을 표현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빛에 관하서는 성경을 시작하는 창세기에서도 흑암이 혼돈한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흑암과 혼돈이 정리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빛>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빛이 있어야 하나님의 세계의 시작, 곧 태초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요한 사도 역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 사도의 이 서신을 받아서 읽고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귐이 있음으로부터 그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에 관한 태초가 시작된다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이 하나님의 빛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에게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의 태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식 표현이고,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표현한 것이다. 즉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어둠에서의 구원이다. 이 구원은 가난에서의 구원이나 병에서 구원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요한 사도가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빛이신 것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운명에 대하여 어두운 중에 있는 상황에서 비치는 빛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이 구원의 실체는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모르는 것은 존재 목적을 모르는 껍데기 밖에 없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이라는 내용이 자신의 삶의 목적과 내용이 되는 하나이다. 이것은 로봇태권브이가 조종사 없이 강철덩어리로 있다가 조정사가 타면서 태권브이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정자가 없는 수백억 달러의 첨단 전투기는 조종사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조종사는 전투기의 빛이다. 전투기는 조종사가 없으면 깡통으로 있는 어두움의 상태인 것이다. 그 값어치가 아무리 대단해도 전투기의 존재 목적은 조종사가 가지고 있다. 즉 조종사가 없으면 어두움이고, 목적을 가진 조종사가 타서 조종사의 목적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 목적인 전투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고 그것이 빛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고, 사람의 빛이며, 바람의 존재 목적이고, 구원이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귐이고, 요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