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2619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는 것을 Unique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하나 됨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 됨은 Equal이나 Synchronize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엄청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는 개념을 Equal이나 Synchronize로 보는 개념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람과 하나가 되는 ‘신인일치(神人一致)’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성경적 관점이 아주 부족한 생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귐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사람을 만드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뱀의 유혹과 같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것이 바로 equal의 개념)’과는 의와 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가 되는 사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와 격이 같아지는 equal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법은 뜻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는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표현할 형식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곧 하나님의 의는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형식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의가 육신을 가진 인생의 삶으로 표현되는 것,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사귐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사귐과 하나 되는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본성이 아들로 성육신된 그런 관계이듯, 하나님의 뜻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인하여 표현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요한사도는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고, 요한 1서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나신바 된 지라”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그 생명의 말씀이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육신을 통하여 나타나고 표현되어서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표현된 상태이고, 그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인 것이다.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한 형식이기 때문에 아들이 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독생자가 되시는 것은 그것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法)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법으로 처음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을 보고 그 법이 하나님의 법이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자신도 예수님과 동일한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을 아들 삼기 위하여 만드시고, 아들을 이 땅에 육신으로 보내셨다는 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뜻과 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주신 육신을 가진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 그것이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앞에서 우리는 신과 사람의 사귐의 근간은 제사라고 했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귀는 사귐의 기본이 예배라고 했다. 우리의 예배와 제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제단 위에서 피 흘리고 불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몸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 제사고, 그것이 예배이며,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이며,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이 땅에 보내신 이유이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목적이고 이유며 본분인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요한 사도는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 사도가 발견한 예수님의 모습 안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육신을 가진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으신 마음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을 전하고자 함이었고, 그 메시지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기에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가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예수님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의 정체성이 바로 하나님과 그 아들이 사귐이 있는 상태이다. 그 예수님의 정체성이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첫 아들이요, 첫 열매이고, the Christ이시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나타난 사귐이 있는 그 처음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보고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정체성 곧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에 관하여는 요한 사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라고 하셨다.


이것은 선언이다. 즉 모든 사람,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 그들도 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하여 이제 십자가를 지려 하신다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영과 같은 존재 그리고 신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을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컴퓨터 운영체제인 Windows가 나의 컴퓨터와 하나가 된 것과 같은 것이고, 방송국에서 보낸 신호가 내가 보는 TV와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 것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이 처음으로 하나가 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법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하나님=사람”이라는 공식으로 생각이 된다면 그것은 마치Windows와 컴퓨터 하드웨어가 동일한 상태와 동일한 물건이 되는 것을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바로 그런 시도가 에덴동산에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이유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이다. 즉 하나님과 같은 권세와 능력을 가지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요한일서 1장 1-4절) 사귐(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8. 07:37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을 먼저 생각한다.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는데 예수님은 걸으셨고, 또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는데 예수님은 살리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이 예수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내시기 위한 과정이지 예수님의 정체성이 아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궁극의 정체성은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은 여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아 놓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명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적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사귐이 있다는 증거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가진 육체와 마찬가지로 죽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무능하거나, 아니면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보니, 스스로 내려오지도 못하는 육신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기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그것은 전초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고, 그리고 보여주신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여 같은 성품을 가진 존재가 되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사람에게 있어 기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제자리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볼트 하나도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놀라운 축복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목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자신이 만들어지거나 존재하게 된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가 볼 때는 보잘 것 없고 한계와 부족함 그리고 연약한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늘 아무 것도 아니고, 스스로는 자신이 육신이라는 것을 저주하고 그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 한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스스로가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기까지 했던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는 것 그것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기적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자신이 기적을 주관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시고 그 기적이라는 연결 고리의 완성이자 궁극의 모습을 십자가에 달리셔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바로 그 기적, 바로 그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두신 뜻을 예수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생각과 의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 된 사귐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사귐이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사귐을 육신을 가진 요한 사도에게 보여주심으로 요한 사도가 그것을 만진 것과 같이 자신도 그런 사귐이 있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과, 또한 예수님께서 그 사귐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