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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 당신은 나의 피남편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8. 13. 03:45 Writer : 김홍덕

(출애굽기 4:18-31)

하나님과의 줄다리기가 끝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으로 간다. 그런데 성경은 이 상황을 장인에게서 떠나는 것으로 표현한다. (4:18-19) 그리고 난 뒤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이다. 이에 그 아내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 표피를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나의 피남편이라 외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으신다. (4:24-26)

 

왜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까?’ 싶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사건은 모세의 지나친 사양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란 걸 알고 조명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모세를 죽이거나 어떤 대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 일 후로는 지나치게 사양하던 모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건 모세의 정체성을 확정하는 사건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건은 모세에게 있어 세례와 같은 사건이다. 사람의 정체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 육신의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순종하지 못하던 모세를 형식을 본질로 보는 가치관을 버린 존재로 확정하는 사건이다. 이 일을 겪고 애굽에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만난 모세는 하나님이 보여주라는 기적을 행한다. 이젠 하나님의 능력,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의가 모세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목적은 모세를 죽이거나 겁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세의 정체성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할례라는 의식은 형식을 벗겨내는 것, 즉 형식을 본질로 보는 시각과 본성을 벗어난 존재라는 걸 확정하는 예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성경 속 여자는 항상 형식을 의미한다. 특히 남녀가 가지는 상징성은 그리스도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육신이란 형식을 입은 존재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 사람은 형식이고 하나님은 내용이며, 남편은 내용이고 아내는 형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도 대표적인 사건이다. 아비 회당장은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없는 회당장의 품에서 난 자식이 딸이며 그마저도 회당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에 죽은 상태로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그 딸을 살리신 건 예수님이 바로 회당의 내용이고, 내용과 형식이 있는 상태를 하나님께서 생명이 있는 상태라 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런 성경의 흐름에서 보면 장인에게서 떠난다는 건 형식을 떠나겠다는 의미다. 입이 둔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가치관을 떠난다는 의미다. 이런 모세 앞에 모세의 품속에서 나온 아들의 할례가 행해졌다는 건 모세의 생명이 입이 둔하여 하나님의 일을 못하겠다는 형식에 매인 상태를 벗어났다는 걸 확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모세의 의가 육신이 된 아들에게 행한 할례는 피는 생명이고, 남편은 내용이며, 할례는 형식을 벗어버리는 예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피남편이라는 건 모세가 아내 십보라에게 생명의 남편이란 걸 넘어 모세는 이제 형식에 매몰된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 사건은 이제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격 있는 지도가 되었다는 걸 확정하는 사건이다. 모세에 대한 자격 인증이 이 사건의 목적이자 본질이란 의미다. 출애굽 과정에서 처음 바로 왕을 대면했을 때 어느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모세가 말을 잘하지 못해서 아론이 나서야만 하는 상황은 별로 없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므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끄는 온전한 지도자로서가 되었음을 확정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우리 역시 모세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바로 형식이 본질이 아니라는 걸 아는 존재,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란 형식이 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게 구원이고, 그런 존재가 그리스도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이끄는 여정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내용이 육신이란 형식이 되는 존재,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구원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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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0) 말에 능치 못한 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8. 3. 12:18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기적과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깨끗해지는 기적을 보이셨음에도 모세는 자신이 말에 능하지 않다는 핑계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또 사양한다. 결국 하나님은 진노하시면서 형 아론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입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세에게 상기시킨다.

 

겸손 같아 보이는 모세의 모습은 단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역을 사양하는 게 아니다.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 구원에서 순교에 이르는 모든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어떤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람의 일반적인 태도다.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은 다분히 사람의 생각이고, 분명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대개 이렇다. 그리고 그 조건은 대부분 돈, 곧 경제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일에 사람의 조건은 필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 제시하는 조건은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게 해 주시면 그 돈으로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라는 다짐 같은 것인데, 이게 복음의 사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원도 그렇게 생각한다. ‘먹고 살기도 급한데 인생의 의미가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다. 말이 둔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어렵다는 모세의 항변이 사람의 이런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이런 태도를 장사하는 것이라 일갈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출 4:11)

 

또한 모세의 사양과 변명에 관해 네가 걱정하는 입과 말은 내가 지은 것이란 말씀으로 탄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이미 다 아신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표현할 사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시고 미리 다 준비하시는 분이다. 이게 <여호와 이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사람의 육신과 말은 형식일 뿐, 본질은 하나님의 의다. 그리고 의가 온전하면 형식은 자연스레 온전하다.

 

모세가 언급한 말에 관해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말은 형식이란 것이다. 본질은 말로 표현하는 의도다. 말이 어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어렵다는 모세의 변명은 의도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건 모든 사람의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일이 갖추어져야 하나님의 일이 온전하게 된다는 사람의 생각이다. 교회를 잘 건축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이 모인다는 생각이 그렇다. 그런 교회에는 형식이 중요한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형식을 가진 존재가 필요해서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는 하나님의 반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까지 언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만드셨다는 건, 하나님의 의라는 무형의 뜻이 입으로, 말로 표현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입과 말은 의가 분명하면 그에 종속된다.

 

사람은 때로 예수만 믿으면 도둑질해도 되느냐?” 묻기도 한다. 그건 그리스도가 도둑질하는 본성을 가졌느냐?”는 뜻이다.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같은 본성에서 비롯된다. 마귀의 자손들은 마귀의 본성대로 행동하며 산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자기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식은 의에 종속된 것이다. 무엇이 본질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는 태도다.

 

하나님이 조성한 입의 말이 어눌해서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모세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사람의 모습이자,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의 불신을 대변한다. 모세에게 한정된 마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란 뜻이다. 생각해보면 구원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형식이 아닌 본질이 바뀌는 것, 생명이 바뀌고 바뀐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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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1-1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기적은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이 된 지팡이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과, 품속에 손을 넣으니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다시 넣으니 깨끗하게 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적을 보고 믿지 않더라도 두 번째 이적을 보면 믿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혹시 그래도 믿지 않는다면 하수를 좀 떠서 땅에 부으면 피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런 이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믿게 함이라고 이적을 행하시는 이유도 알려 주신다.

 

지팡이는 목자와 인도자의 상징이다. 어디로 가는지를 정하는 권세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사탄을 상징하는 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모세를 세우겠다는데 믿지 않는 모세의 길은 사탄의 길이라는 의미다. 모세 안에 있는 불신이 뱀 같은 생각이란 게 드러난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잡으니 지팡이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사탄의 길에서 온전한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의미다.

 

믿지 않는 모세의 마음이 뱀이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잡은 지팡이는 하나님의 길이다

 

하나님께선 이 이적이면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임하신 걸 믿을 것이라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걸 추구하던 세상 사람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인생의 목적과 의미로 알고 사는 기적, 곧 그런 사람의 삶을 보면 그 모습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임하신 일이라는 걸 알고 자신도 그 길을 순종할 것이라는 의미다.

 

세상 가치 아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인생의 의미로 알고 사는 사람을 보면 그가 하나님이 임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뱀이 지팡이가 되는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이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세상 가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사람을 보는 걸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사실 사람은 거의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구원하시려 한다. 하나님에 관해 무감각한 그들에게는 손에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깨끗하게 되는 기적이면 믿을 것이라 하셨다.

 

문둥병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의 분포로 보면 많지 않은 질병임에도 성경에는 유독 많이 나온다. 이는 문둥병이 가진 '무감각'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온 땅에 당신의 존재를 밝히시고, 또 사람들 사이에 세상 가치를 추구하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가 바로 문둥병이다. 뱀의 길로 가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속한 사람의 삶을 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문둥병자다.

 

문둥병자처럼 온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인지하는 상태가 되는 게 구원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보이신 기적으로 이들도 깨끗게 하시겠다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 삶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구원하신다는 약속이다. 문둥병이 고쳐지는 걸 보면 문둥병자인 자신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킨다는 걸 믿을 것이라는, 즉 구원하신다는 걸 믿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때는 나일강의 물을 땅에 부으면 피가 되리라 하신다. 나일강은 애굽의 물로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생명수, 물이 말씀과 율법이라는 걸 생각하면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규율과 율법이다. 이 물이 땅의 피가 된다는 건,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는 기적에도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 가치를 생명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이후에 바로에게 행하는 기적에서 보듯 이 나일강에서 온갖 재앙이 나와 사람을 괴롭히듯,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율법은 사람을 재앙으로 이끈다. 하나님을 끝내 믿지 않는 삶이 어떤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과 다른 길을 고집하는 뱀의 본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온 땅에 충만하고 우리 옆에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구원이며, 세상의 가치를 자기 생명으로 여기는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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