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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7 (마가복음 12:38-40)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마가복음 Date : 2019. 7. 1. 13:39 Writer : 김홍덕
서기관의 책망과 경계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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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역설적일 수 있는데 아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하여 머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사람이기에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생명임을 압니다. 그리고 생명이 자라고 그 생명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것도 압니다. 사람이 내일도 사람으로 숨을 쉴 것이라는 것과 내일이면 하루 더 산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 듯.


성경의 모든 말씀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드러난 것은 육신을 가진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믿느냐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온전히 아느냐의 문제이고, 믿느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인생이 되는 것을 믿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을 힙 입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온전한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정체성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바로 아는 것이 자신에게 순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순종과 수동적인 이유가 또 다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한 방향성이 반대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뜻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 여깁니다. 하나님을 위한 자기 계획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이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알고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목사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자신이 규정하고, 그 생각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고, 목사가 되려면 성경을 어떻게 지키고, 어떤 마음가짐과 행실로 살 것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입니다. 설사 구원도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하나님과 다르게 생각하는 생각이 믿음이나 아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산 존재냐 아니냐는 오직 그 목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생명의 주관자라고 하심도 육신의 호흡에 대한 주관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목적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호흡이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사람 눈에 생명의 본질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목적을 위해 주신 것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은 그 목적이 온전하게 성취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든 목적이 사람에게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주관하는 것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놓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함 이외에 하나님 아들이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 구원 받을 이름(정체성)이 없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삶을 보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삶으로 온전히 나타난 사람, 목적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의 목적이 자기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기 삶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로 알고 그것에 내어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생명이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국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이라는 세계가 열린 사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이기에 장성함이 있고, 자라고 충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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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씀하시는 아는 것은 자기 안에 체휼된 것이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나타나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둘 다 자기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본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는 것은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은 이들에 대하여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것과 같이 영생을 얻은 사람들도 하나님과 또 예수님과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7:22)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니 사람이 기도하면 불치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뱀 혓바닥소리를 내면서 성령을 운운하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콜라병에 콜라가 담겨 있어 사람들이 그 병을 가리키며 “콜라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의 표본은 바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듯,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예수님과 같은 법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믿음은 순종이고 수동적인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자 육신을 가진 삶의 의미인 것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시며 보이신 의와 뜻이 자신의 운명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것은 체휼되고 자기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이신 것을 순종하므로 자기 안에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므로 생명이 되고 육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가지게 되므로 그것이 바로 체휼이고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인생의 존재 목적과 운명에 순종한 믿음이 생명이 되게 하시면 자기 안에 그 생명의 본성이 있어 그 생명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알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사람인 존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사람이란 어떤 본성을 가졌는지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법을 진정으로 안다면 단언컨대 성경이 신학이란 학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좀 더 알기 쉽도록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그 말씀의 뉘앙스를 각 사람의 현재의 시점과 연결하는 것을 위한 다소간의 공부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신학을 한 사람에게만 자격을 줄 정도로 격을 달리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이유는 성경 어디에도 없는데, 그 근거도 없는 이론과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성경을 공부하는 모순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사람에게 두신 의와 뜻이 육신을 가진 자신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순종한 사람의 믿음을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하시므로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잉태되고 본성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성한 믿음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성령의 열매라고 하며, 생명의 법이라고 하고, 성령께서 잉태케 하신다고 하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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