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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를 보이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로 끌려가고 달렸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십자가로 끌고가고 순순히 달리게 했다. 사람에게 이것을 전하셨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예수님의 목적대로 그리스도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예수님의 제자다.

 

핵심은 하나님의 의와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임하고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육신이란 형식을 가진 존재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이미지를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형상 가진 존재로 태어난 존재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사람을 지으신 목적의 표상이다. 표상이 세상에 오시므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의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구원이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자기 육신을 십자가에 드려 깨어지는 것에 내어 주시므로 안에 있는 물과 , 말씀과 생명인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

 

이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이 담긴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존재의 목적을 회복한 존재, 물과 피로 거듭난 사람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 구원의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과 피로 거듭난 사람은 또한 예수님 같이 안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시므로 생명을 얻게 된다.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이니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육신 가진 사람에게 이것을 전하러 오셨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자기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서 생명이 되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나는 것이다. 그게 거듭남이다. 이런 관계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을 듣고 믿으며, 무엇보다 들은 사람이 예수님 같이 하나님 아들이 되므로 예수님의 제자다. 전하고 가르친 대로 존재가 바로 제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성령으로 생명이 사람은 하나님 아들이고, 법의 실체로서 우리에게 오셔서 법을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면 예수님의 제자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하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을 제자훈련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적 개념 하에 제자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훈련이나 모방으로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외식 경계하라고 하신 것을 상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 정확히는 보이고 전하신 것은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다. 따라서 하나님 아들로 새롭게 나야 예수님의 제자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의 궁극은 바로 십자가다. 세상에서 이기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치 앞에 패자가 되고 죄인이 되는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들이다. 이렇지 않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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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마가복음의 전개와 특징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2. 10. 13:38 Writer : 김홍덕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 가장 간략하게 전개된다. 16장으로 구성된 마가복음은 8 후반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시기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 사람들과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기간이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이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것을 집중해서 조명했다고 있다.

 

간략한 전개 전반부에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과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들이 주를 이룬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나, 주기도문 그리고 산상수훈 등도 대부분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길게 기록하지도 않았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복음의 시작이자 전부라고 선언하고, 복음이 사람을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예수님의 치유를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복음이자 그리스도인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과 달리 십자가를 지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메시아는 높은 자리와 위엄을 보일 것이라는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르게 세상의 가장 낮은 신분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박힐 그리스도임이 드러난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고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사람이 그저 받아들일 없다는 것도 심도 있게 다룬다. 세상의 기준으로 높고, 능력 있고, 육신의 가난과 질병을 해결하는 존재가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야기 한다.

 

중심에는 당연히 제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을 예수님은 십자가를 것이라는 말씀을 처음 하셨다. 제자들에게 그것은 도저히 믿을 없는 말씀이었다.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진다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가끔 생각하면 도무지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다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로 거의 대부분의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고 있다. 사람은 육신의 삶이 평안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이 가장 복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죄인으로 박힌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마가복음이 전하는 복음도, 그리스도의 정체성도 모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병자를 고치신 것은 얼핏 육신의 병을 고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직임인 것처럼 보일 있지만, 그렇게 고침 받은 사람들도 죽었다는 것을 잊으면 된다.

 

예수님께서 육신이 병든 사람을 고치신 것은 하나의 예외 없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 가장 결핍된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에 소경이고, 삶의 본질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니 문둥병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대로 살지 못하니 중풍이고,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해 좌충우돌 살아가니 귀신 들린 것이다.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회복되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삶의 의미와 존재 목적을 알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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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4-15) 때가 찼고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2. 9. 06:26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리에서 오셔서 하나님을 복음을 전하실 때가 찼다 말씀을 하셨다. 때가 찼다는 것은 어떤 것을 시점이 되었다는 의미와, 어떤 것을 하기까지 있어야할 , 준비되어야 것들이 갖춰졌다는 의미다. 시각이 언제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것이 있으며, 그것이 준비된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깝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종식, 율법적인 신앙이 끝나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진다는 뜻이고, 자신이 율법적인 신앙 안에 있었다는 회개가 있어야 복음이 들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연히 말씀은 예수님이 땅에 오신 시점의 시간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율법 신앙 안에 있었다는 회개를 하게 되는 시점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자신이 율법 신앙 안에 있었다는 것을 회개하려면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만큼 해봐야 한다. 그러면 율법 육신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태가 바로 때다.

 

율법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기까지의 시간 =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

 

사람은 개인적인 능력이 있기에 객관적 지표로 율법적인 신앙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규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죽을 만큼 신학 공부를 해야 하거나, 라마단과 같이 자기 학대를 얼마 이상 해야 하거나 소나무 뽑을 때까지 기도를 해야 한다 등의 기준은 없다. 그리고 율법이라는 것이 반드시 성경을 육신으로 지켜내는 만을 한정하지도 않는다. 결국은 성경에 수렴하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 있고 의를 육신으로 추구하다 보면 육신으로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육신의 역량으로 육신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방법으로는 되는구나!’라고 깨닫게 되어 있다. 이게 어려울 같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죄를 <시인>하면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하고 있고 알고 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는 바로 때다. 육신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상황이나 시간이 되었을 때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때의 정점이 바로 세례 요한이다. 그래서 요한이 잡혀서 종식되는 , 율법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 그리고 앞서 설명한 같이 누구나 상황에 있기 때문에 시인만 하면 된다. 그게 회개고, 회개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시작된다.

 

마가복음의 시작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때가 언제인지 15절에 정의를 내린다. 바로 세례 요한이 잡힌 , 개인의 삶에서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고백한 때에 복음은 시작된다.

 

율법은 행위로 의로워질 있다고 믿는 , 육신으로 열심히 살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고백하는 ,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 복음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위로 의로워질 없다는 , 육신으로 의를 이룰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고백하지 않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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