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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35) - 선악과의 본질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4. 14:10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이 선악과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날 때 이미 육신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두신 것을 사람이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으므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어린 양이 희생 당했고, 그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육신을 가졌다는 것이 허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을 여셨는데, 그것이 바로 혼돈 가운에 있던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천지창조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육신으로 났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의를 표현하시겠다는 의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데, 육신이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그 성품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육신인 사람이 함께 있는 상태를 계획하셨는데, 사람이 이 육신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저 천사 같이 날아다니고 싶고,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고 있는데, 먹었다는 것은 음식이 내 피와 살이 되듯이 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신을 가진 인생을 자기의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혼돈이다. 존재의 목적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을 자기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창세기 이전의 상태이고,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진 것이다. 


즉 자기 인생에 대하여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펼쳐 간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생각할 때 '인생은 이것이다'는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인생은 이렇게 하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고,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정의도 함께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했다는 것은 자기 안에 인생에 대하여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생의 상태는 에덴 동산의 어린 양의 희생도, 예수님의 십자가도, 또한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천지창조도 없는 상태로 육신만 생물학적으로 멀쩡한 살았으나 죽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악과는 사람이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께서 시험 삼아 두신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람이라는 표현 양식을 창조하셨다는 그 자체가 이미 사람이 볼 때, 영이라는 선과 악으로 규정하는 육신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과 에덴 동산 중앙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는 것은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즉 선악과를 두셨다는 것과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과 육신을 가진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 인생을 <선악과를 먹었듯>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심으로 그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빛"과 같이 사람 안에 비춰져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그 창조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써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 이 창세기의 말씀이고 선악과의 말씀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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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34) - 선악과의 존재 시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4. 11:02 Writer : 김홍덕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시점이다. 아니 시간의 개념이다. 근원적으로 지금 이 창세기의 말씀이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즉, 선악과의 문제, 선악과와 관련한 모든 관점이 세상이 창조되고, 그 창조의 과정 속에 에덴 동산이 있고, 그 에덴 동산에 있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라는 순차적인 사건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다 보면 모든 문제를 천지가 물리적으로 창조 되던 시절이라는 시간 프레임에 함께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 창세기에 대하여 포스트를 해 오면서 강조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창세기의 말씀이 옛날 옛적에 하늘과 산과 바다가 만들어지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떠 올려야 한다. 지금 이 모든 이야기는 바로 오늘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고백적인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천지창조가 바로 나에게 있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이 창조의 과정은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표현이고, 이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의미가 나에게 생김으로 열리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과 그런 고백 속에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의를 표현하시기 위하여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시기 전의 혼돈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가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부터 생긴 여러 가지 의문과 혼돈들이 그것이다. 즉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라는 말씀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온갖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마치 우리가 컴퓨터에 대하여 어두운 자였다가 좋은 선생을 만나 깨닫게 되었을 때 빛을 만났다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혼돈 가운데 있는 우리 사람들에게 빛이 되신 것을 "빛이 있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조의 과정이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심으로 마치는 것은, 사람이 이 창조의 최종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의 형상 즉 영이신 하나님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나오게 되었을 때  그 존재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물학적인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육신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미 생물학적으로 태어나서 멀쩡한 육신으로 살고 있다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빛을 만나고,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과정으로 표현된 것과 같은 의미의 과정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며 사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존재로 살고 있지 않는 상태는 곧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세상이고, 이것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죽은 자와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인 하나님의 세계가 그 인식 세계 안에 열리지 않은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어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멀쩡하지만 시간이 가지 않는 시계처럼 죽은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이 서기 30,000년에 살던 기원 전 10,000년 전에 살든 동일하게 그 사람에게는 천지창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상태, 즉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살았다고 할 수 없고, 죽었다고 하는 상태가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실 때 그 죽은 상태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창세기 1장 2절이 되는 것이다. 땅(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 상태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죽은 상태인 것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선악과라는 것이 단순히 에덴동산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간주되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선악과를 먹을 줄 알면서 왜 만들어 놓았는가?’ 반문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선악과를 과거의 한 사건으로 보는 것만 있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악과가 모든 사람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사건이고, 그렇다면 선악과의 시점이라는 것이 과거가 아니라, <나>라는 한 개인의 어떤 시점에 있는, 혹은 있었던 일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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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33) - 선악과는 필연적인 것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4. 09:26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성경을 자기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선악과에 대한 말씀을 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보고 그 가운데서 선한 것만 취하여 사람을 그 선의 관점에서 경건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성경을 주관적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관점은 당연히 자기의 삶을 선악과를 먹은 인생이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해 가는 것은, 고백적인 관점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로 인하여 사람들이 범죄 할 것을 알면서 선악과를 만들었는가?'>하는 문제의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는 자기 고백적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것은 해석에 어떤 방향이나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1"이 있고, "2"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자기 고백적 관점이 먼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즉 자신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이라는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심문 받는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그것처럼, 선악과 역시 자기 고백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과가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의 문제를 하나님과 사람의 존재와는 별개의 문제로 본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이어 세상을 만드시고, 또 사람을 만드신 그 모든 경륜과 별개로 또 하나의 과정과 사건으로 본다면 '미리 아셨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선악과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과정,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창조와 절대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하나님의 천자창조 과정의 한 요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시적이고 동일한 것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선악과라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으로 그 형상 곧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그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악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육신이라는 형식이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분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니 선악과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악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육신이라는 형식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이미지를 형상으로 표현 하면서 시작된 동시적 개념인 것이다.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니 하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시는 순간, 이미 선악과의 문제는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내용인 의를 사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형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순간 사람이 악하게 보는 육신이라는 것이 함께 생겼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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