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8)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11. 11. 06:22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는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아침에 거두게 하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주셨다. 그리고 누구나 하루 먹을 만큼, 장막에 거하는 사람의 수 대로 거두라고 하시니, 각 사람이 자기 먹을 만큼 먹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사람이 먹는 게 다를 텐데 같은 한 오멜씩 거둔 만나가 부족함이 없고, 남김이 없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말 그대로 각 사람에게 합당한 은혜를 주신 셈이다.

 

그런데 백성 중에는 자기 필요 이상으로 거두고 남겨 두었더니 벌레가 생겼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순종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없으니 아예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매일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면서도 자기 생각에 '내일 없으면 어떡해?'라며 나름대로 준비 정신을 발휘한 것이지만, 본질은 불순종이고 하나님에 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끄신 은혜처럼 내일도 그럴 것이란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사람은 지금까지 은혜와 내일 일을 다르게 믿는다.

 

사람들은 과거가 된 시간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감사하고 놀라며 찬양한다. 그러나 내일 일을 생각할 때는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내일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다르게 대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은 확률로 하나님을 대한다. 역사적으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확률도 이번 경기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스포츠 경기처럼, 내일 일을 염려한다. 홍해를 가른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 그대로라면 먹고 마실 것을 염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행여라도 내일 먹을 게 없을까 싶은 마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더 챙기는 게 사람이다.

 

하루치 이상의 만나를 챙긴다는 건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

 

갈라진 홍해를 건너고 세상 어디 그런 마음이 있을까 싶게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확실성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믿는 건 어려워하지 않는데, 내일 일은 늘 염려한다. 인생의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그 삶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달성하는 동안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주시지 않을까 걱정한다. 광야에서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믿음의 실체를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가 '주인이 지금까지는 충전하고 주유해 주었는데 내일도 해 줄까?'라고 생각한다는 걸 내가 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셨다고 믿고 말하면서, 내일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확실한 일은 마치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믿지 않는다면 그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한 뜻이 이루는 동안 은혜를 베푸신다.

 

사람이 이런 모순에 빠지는 건, 과거가 된 일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반면에, 아직 이루어진 일은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자기 의와 자기 가치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는 하나님 은혜로 여기는데 저항이 별로 없지만 미래는 어떻게 과거가 되어야 하는지 자기가 정해 놓은 게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가 정한 대로 해 주시길 기대하고 믿지만, 아직 손에 쥐지 않은 탓에 결과가 정해질 때까진 늘 의심한다. 내일 일을 염려한다는 게 바로 이거다. 그 불확실성을 돌베개 베고 잔 야곱처럼 혼자서 씨름한다.

 

자기가 시작하지 않은 인생의 미래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의 마음이 율법에 얽매이게 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이틀 분량의 만나를 취하는 것이다. 이게 광야 생활이다. 이 불확실성이 두려워 성경대로 행하려고 한다. 자기가 정하고 기대한 대로 미래를 견인하려고 성경을 지키려 그렇게 노력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의 삶을 서술한 말씀인데, 그러니까 성경을 지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지킬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인데 육신의 복락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성경을 지키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 밖으로 나가지 않는 광야 생활이라 설명했다. 오늘날 성경대로 살아서 세상의 축복을 얻으려는 율법 신앙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괜히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생명과 본성으로 이어진 육신의 부모처럼 지금까지 보살폈다면 내일도 보살피시는 게 하나님이다. 지난날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믿는다면 내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거다. 행여 내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어떡할까 염려한다는 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다. 그건 거듭난 생명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다. 결국 구원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본성으로 살기에 내일 일이 이미 자기 안에 있다.

 

다음으로 그런 마음은 육신의 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다가올 내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는 본성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안다면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다. 내일 일도 이미 자기 안에 본성으로 있기 때문이다. 본성에 있다는 건 육신의 복락을 기준으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다. 구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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