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 내린 하나님의 재앙은 애굽에 한정된 이벤트성 재앙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삶 그 자체다. 구원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사람이 자기 삶을 괴롭게 여기고,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들을 벌이나 재앙으로 여기는 것에서 구원 없는 삶이 재앙적 삶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사람 스스로가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이 재앙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내린 재앙만이 아니라 구원 없는 삶, 그 자체다.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10가지 재앙은 여러 관점에서 보고 또 분류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구원 여정에 관한 말씀이란 주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10가지를 2-4-4(3-1)로 분류하면,

  • 1, 2번째는 인간 자아 정체성에 관한 갈증을 세상 것으로 채우므로 겪는 재앙이고,
  • 3~6번째 재앙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걸 본질로 여길 때 겪는 재앙이며,
  • 7~10번째 재앙은 하늘, 즉 자기 의와 가치가 무너지는 재앙이다.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갈증을 세상이 귀하다고 하는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이들이 일생을 바쳐 추구한 결과 앞에 언제나 허무함을 호소하는 게 인생의 재앙임을 보여준다. 이런 재앙은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에겐 삶 그 자체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그리고 이어지는 이, 파리, 악질, 독종까지, 세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 재앙은 사람과 육축의 몸에 임하는 재앙이다. 그렇다고 이게 육신이 병드는 걸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삶의 본질이라 여기는 것, 눈에 보이고, 사람이 실체를 소유하는 게 삶의 본질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해를 입는 재앙을 말씀하신다. 즉 땅의 것을 생각하는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땅의 것에 임하는 재앙이다.

 

세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의 재앙은 사람이 인생의 본질로 여기는 땅의 것들이 해를 입는 것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세상의 지혜에서 찾고, 그 목적이 실현되었다는 증거를 눈에 보이는 형상 있는 것에서 찾는다. 인생의 평안과 부유함이라는 가치는 몸이 평안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태가 되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부질없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특히 이때부터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너의 것"에 재앙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너의 백성, 너의 가축, 이렇게.

 

그리고 가축들에게 심한 악질이 발한다. 가축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땅에서 나는 걸 먹고, 땅을 간다. 그리고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동력을 제공하고 식량이 된다. 생축에게 악질이 발생하여 죽는다는 건 그 모든 기능과 역할을 상실되었다는 의미다. 본질로 여기는 땅의 것, 눈에 보이는 것, 육신의 것을 본질로 아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본질로 여기는 땅의 것들에 재앙이 임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땅의 것이 해를 당할까 늘 염려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느끼는 삶의 괴로움은 전부 이 땅의 것이 원만치 않거나 해를 당할 때 느낀다.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의 삶은 재앙 한 가운데 있음을 실증한다.

 

그리고 이어서 파리가 창궐하게 된다. 이때 바로는 모세에게 이 땅, 곧 애굽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한다면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돌로 칠 것이라며 거절한다.

 

재앙이 이어지는 중에 스치듯 있는 이 대화는 놀랍게도 오늘날에 바로의 희망대로 되어 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걸 얻겠다고 예배드리는 게 그것이다. 하나님께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걸 얻기 위해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건, 세상 가치 속, 곧 애굽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연 모세의 말대로 애굽 사람들의 돌을 모질게 맞고 있다. 세상의 법으로 늘 교회가 심판받고 비난받고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삶은 그 자체가 재앙이다. 인생을 고난이라 탄식하는 게 그렇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 인생은 운동선수에게 주어진 운동장 같다.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존재로 거듭나면 사람들이 탄식하는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조건이고 환경이란 걸 본능적으로 안다. 어떻게 하든지 육신의 수고를 피하려는 사람들, 육신이 조금 더 수고하는 걸 고생과 실패로 알고 사는 세상은 육신을 내어주는 본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게 감사한 것뿐이다. 우리가 재앙과 구원을 잘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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