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제사장은 사람 중에서 세우는 직분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러한 도입은 대제사장으로써의 예수님을 설명하고자 함이다. 앞서 4장에서 안식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의와 목적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라고 권면한 것에 이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이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는 안식을 이끄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제사장의 직임은 자신도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4장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라고 하심과 궤를 같이 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은 결국 동일한 육신을 가진 사람을 구속하러 오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과 우리와 동일한 육신이라는 동질의 접점이 예수님의 구속이 우리에게 의미, 아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가서 안식하게 하는 동질성이자 관계성인 것이다.


이와 함께 예수님 이전의 모든 대제사장들 또한 같은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사람 가운데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해도 그 직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설정한 제사장이라는 신분의 정체성이 멜기세덱으로 나타났던 것과 같이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서 정한 직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라는 것은 그 직분의 정체성, 쉬운 말로 개념과 존재 목적을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 정체성은 사람을 기준으로 정하신 것이기에 사람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도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는 것 같이 그리스도나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직분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사람을 통해서 그 직분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분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연약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사람의 연약함을 용납하게 하신다는 것은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직분에 적합한 존재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연약하게 지으신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양 같이 끌려가서 달리셨다는 것으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 것이다.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 연약함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이루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님께서 아신다는 말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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