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순종으로 멜기세덱의 반차에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이전에는 제사장이 아니었다가 그 때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대제사장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셨고, 아브라함 때의 멜기세덱 역시 제사장이라는 정체성(the Priest)이 나타난 사람인데 그 정체성의 본질이 바로 예수님의 육신이 된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순종이 멜기세덱에 속하심을 보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순종이 구속의 제사가 되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고난에 순종하신 순종이 사람들의 구속 제물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살아도 예수님의 구속이 유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하나님의 의에 어떻게 순종하는 것인지 본이 되시므로 육신을 가진 인생이 예수님의 순종하심을 또한 순종하므로 안식에 들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순종하셨다는 것에 대하여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바로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에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거나 이용당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순종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을 보고, 육신을 가진 사람들은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엄청난 사명감과 각오와 인내로 이루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루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예수님의 순종에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단지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육신의 고통으로만 봐도 예수님 이후의 사도들도 예수님 이상의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되는 죽음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순종은 육신의 고통을 신념과 사명으로 감당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과 사도들의 보여준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에 그 대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해야 할 것은 그 육신이 고통 당하는 모양과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이유와 또 순종할 수밖에 없는 본능이다.


예수님의 순종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내가 아니다. 사람들을 죄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것을 참아야 한다는 신념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순종은 그리스도라는 그 본성에 이끌림이다. 사람이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본능이다.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그 본능이 자식 앞에서의 모든 희생과 헌신을 이끌어 내는 순종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순종도 신념이나 목적(숭고한 목적이라도)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이끄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순종은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의 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자기들의 하나님과 그 아들의 정체성에 앞에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은 의의 충돌 시 자신의 의를 내려 놓고 상대의 의 앞에서 죄인이 되는 본성이라는 것이다. 상대의 의 앞에 자신의 의를 내려 놓으면 즉시 죄인과 실패자가 되고 그 결과 종과 같이 되는 것이 세상의 법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일 뿐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아들일 아니라는 주장 앞에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끄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이다. 본성이 이끄는데 이길 재간이 없는 것이 바로 육신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본성을 몸소 보이신 것을 인함이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순종, 육신은 의의 충돌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내려 놓으므로 종과 죄인이 되어 수고하는 것에 사용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다. 


그리고 그 순종을 본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들도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육신의 삶을 받은 의미이자 목적이며 우리 인생의 존재 정체성임을 깨닫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진 본성에 이끌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는 자신이 아무리 불순종하려고 해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속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순종이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고난을 순종하신 것이라고 히브리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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