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권면은 혼인에 관하여 이어진다. 성경이 말씀하는 혼인과 성은 단지 육신의 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간음이라는 것도 육신의 간음에 관한 것이 본질이 아니다. 간음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자기 짝이 아닌 것과의 관계다. 이것은 육신의 성적인 상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게는 간음이 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식도가 흉기로 사용되면 그것도 일종의 간음이라는 말이다.


성경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간음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일상의 범죄를 기반으로 생각해봐도 사기를 포함하여 도둑질과 같이 경제적인 부도덕과 범죄가 어느 시대나 더 많았고, 성적인 것은 오히려 시대에 따라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기도 했지만 성경은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간음에 대하여 많은 권면을 한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간음이란 존재가 자신이 존재하게 된 목적과 다른 정체성이나 목적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존재하게 된 목적 아닌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거나 뚜렷한 목적 없이 아무 것에나 자기 인생의 목적과 의미 두는 것을 일삼는 것이 성령이 말씀하시는 간음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혼인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라는 사람의 존재 목적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 육신이라는 형식을 가진 사람의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사람이 육신으로 혼인하는 것으로 예표된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혼인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다.


그런 하나님의 뜻이 배경이 되어 성경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남자는 의를 가진 존재로, 여자는 형식으로서 늘 나타난다. 이것은 육신으로 어떤 존재가 더 귀한 존재냐의 문제가 아니다. 육신으로 혼인이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는 아들(자녀)이 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안에 가진 본성과 유전자가 또 다시 육신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오직 혼인이라는 과정을 거쳐서만 가능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본성과 의라는 내용이 아들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혼인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을 가진 사람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라고 기록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의가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표현되고 나타나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처음 열었을 때 봤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한 목적이다. 영이신 하나님의 의가 표현될 형식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육신이라는 형식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표현하시겠다는 것이 사람을 만든 목적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인생에게는 존재의 목적이 된다.


따라서 사람이 그 하나님의 목적 아닌 것을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삼는 모든 것은 다 간음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권력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나 육신의 가족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은 다 간음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고등학교 입학하면 국민윤리 첫 시간에 내어주는 과제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민족 중흥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만약 그것을 진정으로 자신이 태어난 목적이라 여긴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간음이다.


이 히브리서에서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믿음의 연장선 상에 있다. 믿음이 귀하니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린 희생을 온전히 믿으라는 권면의 연장선 상에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향한 뜻을 알게 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보이신 그 온전한 뜻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알게 되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본질적 혼인이기 때문에 귀한 것이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자기 인생의 목적이 아닌 모든 사람은 육신으로 혼인에 대하여 아무리 순결해도, 심지어 결혼하지 않고 신부나 수녀처럼 살아도 모두 다 간음한 사람이며 혼인을 천하게 여긴 사람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육신을 만드실 때 육신 안에 주신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거룩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간음이자 우상 숭배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육신의 존재 의미, 자신이 옳다는 주장과 학대 앞에 종과 같이 낮아지는 본성을 인하여 내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삶을 살지 않는 모든 삶은 다 간음이고 혼인의 귀함을 저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이고, 그 보이신 것과 우리가 혼인하여 그 하나님의 의가 내 육신의 삶으로 나타나는 혼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가치로 하나님을 믿는 것 역시 간음이고 우상 숭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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