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9. 10. 15:38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사람들은 흔히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모습도 사람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때 <의로운 오른 손으로>와 같은 표현도 하시고, <얼굴을 드사>와 같은 표현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라고 하셨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무엇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수도 없이 밝히고 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은 어떤 형체가 있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찌니라(요 4:24)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형상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이시니 형상이 없으시고, 형상이 없으시니 그림자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셨는가? 그것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 잠깐 영어 성경의 표현을 빌려볼 필요가 있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image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미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이미지를 떠 올리게 하는 형식을 가진, 정확히는 육신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김새가 하나님과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연상시키고,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치 십자가가 기독교의 대표이미지로서 십자가를 보면 교회가 있다, 혹은 기독교와 연관된 것임을 알듯이,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 처음인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렇다는 것은 성경 말씀 전체의 전제가 그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해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이 육신은 삶을 살아감으로 그 삶을 볼 때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또한 ‘보았다’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와 뜻인 로고스가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것이다. 즉 육신을 가진 인생은 하나님을 표현해 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육신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내용인 생기, 그리고 생령



그런 목적으로 창조하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 넣으심으로 그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표현할 사람을 육신으로 만드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형식에 내용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흙으로 만든 사람이 그 자체로는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될 수 없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기나 생령이나 ‘살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육신이 어떨 때 살아 있는 존재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사람이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 있는 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생기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불어 넣으신 것이 생기라는 것은 그것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생기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사람 안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령인 것이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모양을 만드시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데 생기를 넣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 첫째, 이 생기가 육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육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 둘째, 그 영은 사람의 육신 안에 있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이 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 셋째, 사람은 육신이라는 형식 안에 하나님께서 본질로 여기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 넷째, 사람이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생기가 그 육신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용, 사람은 형식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生氣)’라는 내용과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형상이 없으신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바로 그 목적 때문인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 안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그 사람의 생기, 곧 생명이 되므로 그 생명이 삶으로 표현되므로 인하여 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도록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이 성전이고,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고,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우리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의 생기인 생명이 우리 삶을 주관하므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삶이 성경에 표현된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볼 때 하나님을 느끼고 찬양하게 되는 감동이 있는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영이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형식,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있어야 되기에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아들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가 가진 의가 표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 곧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고, 그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예수님과 같은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이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명의 본성을 찾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내용이 사람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와 뜻이 사람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고, 표현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이며, 법이고,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사람이 살 때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여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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