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구분의 기준은 수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포유류, 설치류 등등 그리고 종으로 구분해도 수 많은 종이 있을 것인데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단 세가지로 구분을 하고 있다. 땅에 기는 것, 짐승, 육축 이렇게 말이다. 이러한 구분의 기준은 무엇인가? 땅에 기는 것, 그리고 짐승 그리고 육축. 이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구분인가?


이를 다시 분류해 본다면, 땅에 기는 것을 하나의 분류로, 또 하나의 분류는 짐승과 육축이라고 볼 수 있다. 짐승과 육축은 땅에 기는 것은 확연히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게 나누는 기준은 땅에 기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땅과 구분이 있느냐? 아니냐? 하는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땅에 긴다는 것은 땅과 별다른 구분이 없는 생명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창조과정에서 보면 지금 이 동물들의 이야기는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세계에 관한 말씀이라기 보다는 바다에서 드러난 땅, 즉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의 과정에 관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생명들은 어떤 각도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죽은 것이라고 보는 존재들이라고 보기 보다는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 유대인이라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과 떨어진 세상에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율법을 몸으로, 행동으로, 절기로 지켜내면 선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악한 것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선악과이고, 땅에 기는 존재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선악과를 권했다는 것은 그 정체성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한 것이다. 간교하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동물들 짐승과 육축이 있는데, 이것은 주권에 관한 구분이라고 볼 수 있다. 짐승이라는 것은 들과 숲 그리고 정글과 초원에 거하는 야생의 동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육축 곧 가축이라는 것은 사람의 손에 의해 길려지고 사육되는 동물들을 말한다. 소, 개, 돼지 등과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부류, 짐승과 육축의 차이는 주인이 있느냐 하는 것이 그 기준인 것이다.


주인이 있다는 것은 그 생명의 존재 이유가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소나 돼지나 양이나 개와 같은 것은 기르는 목적은 다를 수 있지만 생존의 이유가 주인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반명에 야생에 있는 짐승들은 생존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동물들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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