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는 총 6일간 이루어졌다. 이 하루 하루는 달력에서 보는 그런 하루로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그것이 천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 생각 역시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모든 짐승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려니 뭔가 부족하니 천년이 하구 같다 했으니 24시간인 하루 * 365일 * 1000년이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해도 생각의 기본 개념은 하루 = 24시간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이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천체물리학적으로 이 지구가 또는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데, 사람에게 굳이 그것을 이리 강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역시 그런 객관적인 시간 개념에 입각한 말씀이 아니다.

 

천지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것을 기록하셔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루 하루의 창조 내용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한 과정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한 과정 과정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도 자기 정체성도 모르는 혼돈의 세계에 있다가 하나님에 대하여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 세계에 대한 태초가 열리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지한다는 것은 빛이 비추어져 어둡던 세계가 밝아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즉 컴퓨터에 대하여 어두운 컴맹이 컴퓨터에 대하여 밝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빛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자기 정체성과 하나님에 대하여 어두운 사람이었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빛의 창조라고 하고, 그것이 처음 과정 즉 첫째 날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천지창조의 과정은 다 그렇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진다는 둘째 날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아 정체성의 갈증에 대하여 어떤 물을 먹어야 하는지를 구분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즉 생활용수도 상수와 하수가 있듯이, 자아 정체성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학문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를 구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런 것을 알게되는 과정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에 있는데 이것이 빛을 만나고 나면 연이어 거치는 과정으로 이것을 둘째 날이라고 하신 것이다.

 

천지창조의 6일은 이런 것이다. 그 5일간의 과정에 대하여는 앞에서 계속 이야기해 왔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루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객관화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한 과정 한 과정을 하루 하루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달력으로 단 하루 만에 이 천지창조의 과정이 다 열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이가 백살이라도 이 천지창조의 첫날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달력이 3,000년이 되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직 태초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천년 같기도 하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루의 개념이고 의미인 것이다. 그렇게 진행된 천지창조의 과정 그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은 어떤 과정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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