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 소발의 첫 번째 변론 –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2. 18. 17:28 Writer : 김홍덕

자기 경험으로 볼 때 ‘죄 없이 망한 자는 없다.’고 한 엘리바스, ‘욥의 지금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결과’라고 한 빌닷,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발은 ‘네가 하나님보다 지혜로우냐?’라고 욥을 힐문합니다. 이 소발의 말 속에는 은근히 ‘완전함’을 추구하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완전함이란 온전함과는 다르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 앞에 행위로서 온전해지려는 사람들은 상대가 하나님인 점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무결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순서나 예식의 모양 하나에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완벽한 것인지 늘 고민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 완벽함의 기준이 사람의 생각과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완벽하다고 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제사에 지각한 사무엘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로 했으면 그 시각을 잘 지켜야할 것이라 여기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규례에 따라 지키는 것을 바라시지 않고, 왜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지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알기를 바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발을 비롯한 세 친구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벌을 주시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기도할 때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하여 주시옵고’라는 말로 보험을 들려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조금의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그걸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솔직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입니다. 소발의 말과 같이 하나님보다 지혜롭지 않다면 말도 못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나 그 완전함의 기준이 사람에게서 나온 기준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입니다.


온전함과 완전함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온전함은 생명의 법과 목적론적 사고방식의 일환이고 완전함은 방법론적이고 형식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사람이 살면서 취하는 모든 행동에 대하여 완전하지 않지만, 사람이라는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로서는 온전합니다. 그것도 태어나는 순간 온전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온전함은 자기의 노력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완전함은 자기의 노력에 종속된 것이라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가 가진 가치관은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고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복을 주시기도 하고 욥과 같은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관에서 보면 욥이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말에 대하여 소발이 ‘네가 하나님보다 지혜로우냐?’고 반문하는 것은 ‘지금 너의 꼴은 하나님께서 딱 벌을 주신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네가 죄를 범하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너는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가지고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욥이 자기 행위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판단보다 더 나은 것이냐는 의미이고, 이는 너의 행위가 그렇게 옳은 것이냐는 책망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의 말을 근거로 “지금 너의 말로 보면 너의 상황은 오히려 가볍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 앞에 혹시라도 벌을 받을까 하여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이런 생각들은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하려고 하면 전해지는 의에 관심을 두지 않고 행동과 외모에 초점을 두고 전해지는 말보다 ‘네가 목사냐?’, ‘너는 이런 행동 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완전함을 추구하기에 하나님께서 온전하다고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함입니다. 완전함과 온전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온전함을 모르는 것이고, 온전함을 모른다는 것은 생명의 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생명이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행위의 완전함을 보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비교되거나, 그 비교된 수준을 기반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자격을 얻거나, 복음을 전할 자격을 얻거나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뜻하신 목적을 달성하기에 너무 적합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목적 아래 온전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창조하신 목적으로 볼 때 살아있는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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