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요한일서 4장 7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은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하나님이 사랑이신지에 대하여 요한사도는 요한일서 전반에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늘 말씀해 오고 있다.


흔히들 사랑에는 아가페, 필레오(친구간의 사랑), 에피투미아(지식에 대한 사랑), 스톨게(혈연간의 사랑), 에로스(이성간의 사랑)와 같은 사랑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아가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절대적인 사랑, 사랑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다.


하나님의 사랑은 밥 퍼주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사랑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사랑이 표현된 모습이지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사람이 무엇이고, 누구이며 왜 사는지>를 알려주시는 사랑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 인생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은 상호간에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이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사랑은 당연히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모든 의(미)와 뜻과 목적은 다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다.


집에 있는 그릇이 주인에게 사랑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 그릇의 목적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고 잘 모셔두고만 있다면 그것은 그릇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 안에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위하는 것


사랑은 위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어떤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그 상대가 가장 필요한 것을 해 주는 것이 가장 크고 온전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필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절대적이고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이며, 자신은 누구이며,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 이상의 사랑은 없다.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고 최고의 사랑이다. 바로 그런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다. 독생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단 하나의 아들이 있었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육신적인 의미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이라 인정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알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말씀을 성경 전체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영생은 다름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사랑은 의미 있는 관계가 되는 것


또한 사랑은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부여하신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미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로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절실한 존재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사랑은 천지창조 과정에서 지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지만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에서 그 사랑이 가장 큰 사랑이며,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한 유일한 방법이자 사랑임을 말씀하신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를 소망하고 또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가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가지기 위한 것이다. 일례로 사람이 부모로서 열심히 자녀를 위하여 살다 자녀가 독립하면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또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다 한 사람이 죽으면 큰 슬픔과 상실감에 빠지는 것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의 큰 부분이 사라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상실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 의미, 그 이유와 삶의 목적이 사는 동안 돈이나 성공과 같은 것에 있는 것으로 알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결국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죽을 때가 되면 어느 정도는 신분에 관계없이 다들 알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무(無)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의 의미라고 알고 살아가는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의미를 아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말하는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을 표현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 유일한 법을 깨달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자신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독생자인 것이다.


이 유일한 독생자의 첫 열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영생이며, 그런 모든 법을 만드셔서 사람이 자신의 삶의 존재 목적과 이유와 의미를 알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신 것이다.


또한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 존재와 성품을 표현할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절대적인 관계인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실존과 성품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창조가 곧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것은 또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사랑 그 자체라는 말씀인 것이다. 사람은 형식이기에 그 존재의 의미인 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고, 하나님은 내용이시오 의요 생명이요 영이시기에 그 사랑을 표현할 존재인 형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시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아들이 되는 것이 바로 절대적인 사랑이요 사람에게는 영생이요 구원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랑은 당연히 하나님이 시작한 사랑이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창조하신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시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같은 것이며, 이 사랑과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는 것이기에 그 사람은 구원과 영생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릇이 언제나 찬장에만 있다면 그 그릇에게 구원과 주인의 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인 하나님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사람은 그 사랑을 알고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목적 안에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좀 더 선수로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이고, 또 좋은 옷이라도 입지 않으면 남을 주거나 버려지는 것이다. 옷은 사람에게 입혀지지 않으면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살도록 지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옷이 멀쩡해도 죽은 것이듯, 사람이 의학적으로 살아 있다 해도 존재의 목적을 모르고 있으면 죽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셔서 우리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을 알게 하시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살리는 것이라는 것은 바로 구원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유일한 것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이 독생자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존재목적을 가지신 분이고 그것을 알려주시는 사랑 자체이시다. 그 사랑은 유일한 방법이며, 존재 목적을 모르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을 표현하는 형식인 사람이 화목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은 그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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