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 곧 성령은 오직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도록 하는 영 그것 하나뿐이라고 했다. 이 영은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는 온전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람에게 알게 하셨기에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육신을 가지고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이며, 특히 이는 오리라 했고 또 이미 세상에 있다고 했다.


사람의 분류는 대게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방식의 이분법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하면 '이것이냐? 이것이 아니냐? 저적이냐? 저것이 아니냐?'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이 분류는 신앙의 정체성에 관한 일원론, 이원론과는 다른 의미이다.)


생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생명과 물질로 나눌 수 있지만, 생명에 관한 정확한 분류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 있다고 여기는 생명이 있다면, 그것이 아닌 것은 다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흉내나 노릇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게 하는 성령이 계시고 그 나머지는 그 모양이 어떠하고 성령과 나타나는 바가 아무리 유사해도 다 거짓 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 어떤 것을 첨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런 것에 대한 표현은 대부분 이렇게 나타난다. "그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 이 정도는 해야지!"와 같이.


그것이 미혹이다. 신앙은 부인하는 것보다 타협하는 것이 더 위험하고 하나님 앞에 큰 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 보다, 십자가에서 잠깐 기절하셨다는 것이나, 예수님의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실제 정체는 아니라는 식의 타협이 더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잠깐 기절하셨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은 쉽게 구분이 가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도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교회 다니면 그래도 세상에서 좀 그럴듯하게 살아야 사람들이 교회 다니고 싶어 하지?"와 같은 말이 그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예의나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신앙과 무관하다는 밀이다. 그것은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신앙과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 보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자신도 하나님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데 예의나 세상의 성공이나 열심히 사는 모습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심을 느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 안에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있어 그 영에 순종하며 살면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절대적인 간절함이 그 속에 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듯 사람의 심령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 그 생명의 DNA인 하나님의 성품이 금할 수 없게 표현되어지는 삶이 아니라 사람이 율법이나 교리를 잘 준수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은 영적인 문제이지 육신의 문제는 아니라며 육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것들은 아주 교묘한 말로 미혹하게 하는 영들의 세계라는 것을 사도들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그 어떤 아름다운 것을 더한다고 해도 다 미혹하는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하라고 하신 것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미혹하는 영, 곧 적그리스도의 영은 아주 엉뚱하거나 성경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 사도가 있었던 초대 교회 시절의 영지주의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었고,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의 이단과도 다르게 사람이 하나님이나 근거 없이 자신을 그리스도라 하는 것을 엄히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끊임없는 경고와 질책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생각을 교묘하게 조금 더하거나 빼거나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 자신의 생각은 선악 간에 판단하는 기준 곧 선악과를 먹은 심령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신앙에 있어 정말로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것 보다, 믿는 내용을 가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선과 악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사람이 스스로 세운 것 때문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준은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보다 율법이라는 형식이 잘 지켜져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생각했고,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 가진 삶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임을 부인하고 내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혹하는 영의 생각들이라는 책망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기준에 <세상에서 성공>이나 <도덕이냐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첨가되었다. 성공이나, 예의나 도덕이나 고상함이나 부와 명예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더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미혹하는 영이라는 것이다.


성공이나 예의나 수고나 봉사와 헌신과 같은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거나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의를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육신으로 수고하는 수단과 방법과 과정으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조건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오직 육신으로 오셔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과 같이 사람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목적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그 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위하여 육신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 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의 관점이나 영지주의의 과점이나 오늘 타협해가는 신앙의 모든 것은 다 세상에 속한 말(요일 4:5)이라고 요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말을 듣거나 여기에 솔깃하거나 심지어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세상에 속하였기 때문이라고 요한 사도는 말씀하고 있다. 소리굽쇠가 공명을 일으키듯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말과 하나님께 속한 말은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것은 이 모든 세계가 다 생명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아수라나 키메라 같은 것이 없다. 오직 이것이면 이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생명 아닌 것뿐이다.


생명의 구분은 절대로 어렵지 않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가?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나는 노새는 노새이지 나귀나 말이 아니다. 그렇듯 생명은 오직 그 자체일 뿐이다. 하나님의 생명도 오직 그것일 뿐이다. 


그것에 세상의 지식이나 종교적 규례나 기적을 더한다고 그 생명이 더 온전해지거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미혹하는 영이요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시는 것이다. 


변화산에도 바로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에 모세의 율법이나 엘리야의 기적을 함께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늘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시듯 변화산 아래에서는 불(기적, 엘리야의 상징)에도 넘어지고 물(모세-물에서 건져 냄, 율법의 상징)에도 넘어지는 아이를 오직 기도만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기도는 바로 예수님을 구하는 것이다.(이것에 관해서는 주기도문 포스트 등을 참조 바람)


그러므로 미혹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절에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혹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에게 설명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유대인과 같이 종교적인 규례로 변질시키거나 영지주의와 같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변질시키거나 지금 이 시대처럼 세상에서 온 과학이나 도덕이나 예의와 같은 것을 더하거나 혹은 하나님 말씀을 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혹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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