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미워하는 사람, 곧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격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살았다 할 수 있는 사람, 즉 생명을 가진 사람은 그와 같은 형제 곧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것은 세상이 미워하는 이유를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자신을 종교적으로 성찰하고 절제하고 금욕하며 신앙적 공로를 많이 축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생각을 가졌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개념이 하나님과 또한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하신 예수님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세계인 것이다. 그 가장 대표되는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과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가 세상의 본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한 아버지인 형제들은 사람에 대한 생각이 예수님을 미워한 유대인이나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이고 피라미드와 같이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 높이 올라갈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생각 곧 사람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지는 십자가에 나타난 것이 전부이고 유일한 것이다. 여기에 가감이 있다면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른 신앙이 되는 것이다. 모자람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나 더하는 것은 더 문제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님과 세상이 다르게 본다. 하나님은 사람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고 고상하지 못하며 또 마음 안에는 탐욕과 같은 어두운 것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원래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드심에 있어 불량이나 부족한 상태로 만드시고 살아가면서 수행애서 온전하게 이르거나 아니면 살 동안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수리하듯 보충해주어야 하는 상태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존재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사람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선한 행동과 절제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반대로 악함을 가진 사람이 불완전해지고 보완이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예수님을 못 박은 유대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 곧 창녀와 먹고 죄인의 집에 들고 인간이 부족하다 정의하고 보완하는 규정으로 율법의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보면서 만든 조상들의 유전을 어긴 예수님은 도무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형제들은 다르다. 다시 말해서 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아들들인 형제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형제들의 맏이는 the Christ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 칭하도록 지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인 형제들은 다른 것이다.


이 형제들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에 있어 유대인과 같은 안목이 아니어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나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을 믿는 사람은 사람이 육신 가진 삶을 무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보고서 나와 같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삶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같은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기 때문에 당시의 종교적인 율법과 로마의 법으로 볼 때 죄인이 되신 분이다. 그 예수님이 유대인과 로마의 법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면서 자신도 종교적인 법과 세상의 법 앞에서는 언제나 죄인이고 실패자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형제이다.


세상의 법과 종교적인 규례 앞에서 죄인이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셨는데, 그와 같이 우리도 세상의 법과 종교적인 규례 앞에서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법과 생명으로 다시 살리시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과 또한 자신과 같이 사람의 운명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해도 미워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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