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도 사람을 미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원치 않음에도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그 안에 있다. 이런 미움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심한 자책을 하거나 종교적인 수행으로 그것을 극복하려 할 만큼 우리 안에 실존하는 마음의 단면이 미움이다.


이 미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빛이 아닌 어두움에 거하는 자며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요일 2:9~11)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 과정 혹은 단계가 있다면 미워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것이 있는데 미워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이 선행이 된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전에 우리는 상대에 대하여 나름의 판단을 하고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판단하고 못 마땅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곧 자기가 가진 사람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물론 그 기준이라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세상에 종교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것이나 문화적인 것 그리고 도덕적인 기준이 있다 해도 그것에 대하여 그 사람이 그 기준들이 옳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므로 기준이 문제라기보다 자신이 어떤 기준을 옳은 것으로 보는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요한 사도가 빛 가운데 있으면 그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형제라는 것은 같은 혈통 곧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빛 안에 있는 같은 생명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빛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청세기적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린 사람이라는 것이고, 바울 사도의 표현으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빛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렇게 연약한 육신으로 지으신 이유와 목적과 의를 인식할 수 있는 밝음 가운데 있는 사람이므로 그런 사람은 사람을 볼 때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은 연약하고 세상적인 기준이나 도덕적인 기준이나 사회적이고 법적인 기준으로 볼 때 늘 실수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형제는 또한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요한 사도의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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