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신앙을 가지는 것에 대한 반대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한 사도 역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또한 이 세상에 어떤 의, 곧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말씀하시는 책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 만드신 의도가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서 그러하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어야 비로소 그 사람에게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인데, 그것을 창세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음에도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언뜻 모순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세상을 만드신 의도와 목적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연관성을 모르면 안 된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목적을 모르면 이 세상에서의 삶에 매몰되어 살게 되는데 그것은 내용은 모르고 세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식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삶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이것에 대비해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랑이고,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사람의 정체성이며 또한 사람을 창조하고 삶을 주신 목적이며,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상이라는 형식이 본질이 아니라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요 3:16)하시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에게 보이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사람들이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신 목적을 모르면서 그저 눈에 보이는 이 삶이 살아가는 전부라고 여기며 사는 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요한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문제를 정치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인류의 역사를 그것에 몰입시키고 있다. 하지만 작은 개인일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세상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믿는 그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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