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와 같은 말씀을 보는 관점은 많이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와 같은 말씀은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 내어야 들어가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그렇게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산다는 것이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는 생명으로 산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생명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존재의 목적을 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 곧 사람이 육신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말로 많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관한 순서가 바뀌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행하고 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생명이 그 안에 있으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아주 극명하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같이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김씨 성을 가진 아들이 김씨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강아지가 개로 살려고 노력하겠는가? 그것이 아니듯,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의 세계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흉내 낸다고 그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어떤 위협으로 금하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위협한다고 개가 고양이 소리를 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도 제대로 봤다면 '성경을 지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산다.'고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성경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면 어떤 삶을 사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렇게 읽지 못한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의 존재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 즉 '네 정체성이 무엇이냐?' 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 규범으로 보는 것이다. 행동은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본질이 아닌 형식을 본질로 안다는 것이다. 군인의 정체성이 군복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군인의 정체성은 그 사람의 정신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군인이 군복을 입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군인정신이 군복을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의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입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복을 입었다고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군인은 사복을 입고 있어도 그 신분과 정체성은 군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릎 꿇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하면 기도가 되는 것이다. 안식일을 몸으로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이 그 안에 있으면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 안에 있어 그와 같이 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가도 복을 받고 안에 있어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또한 군인이 군복을 입었든 사복을 입었든 간에 군인이라는 것이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어떤 행동을 해도 하나님과 같이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필연적으로 '그럼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으면 사람을 죽여도 괜찮나?'라는 반문을 하는데, 정말로 뼈대만 이야기 한다면 '그래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랬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는 그런 질문과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법을 모르는 것이다. 생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은 상황이 바뀌면 다른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카멜레온이 피부색을 바꾼다고 도마뱀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삶의 목적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아는 삶을 알면 그런 의문은 없다. 생명은 그 본성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지신 본능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 신앙이 있다고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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