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장 1-6절) 범죄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10. 17. 11:09 Writer : 김홍덕

그러면 '사람이 본능을 마음대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마구 먹고, 마구잡이로 성욕을 표현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육체를 함부로 굴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한계와 본성을 가진 육신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모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지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한계와 본성의 존재 이유가 마구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세상적인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면 소위 말하는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한 사도가 엄히 경계하는 영지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후자가 더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둘 다 하나님 앞에서 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나면 다 돌이키게 된다. 그리고 행여 모르던 시절에 육신의 목적을 몰라서 마음대로 한 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법률에 벗어났다면 그것은 세상의 법에 따라 죄 값을 치르고 마음은 하나님 앞에 고백되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들이 무시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사회적 법률과 문화를 범한 것도 같이 사해지는 줄로 아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육신의 목적을 몰라서 사는 동안 지은 죄는 그 법률 앞에 또한 피해자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범죄는 행동으로 지은 것이 아니다. 존재로서 지은 죄를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존재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은 존재에서 표현된 것이지, 하나님의 표현하시는 것이 본질이 아닌 것이다.


그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정체성을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와 같이 부끄러워하고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해야 강해지고 또한 부끄러움을 감추어야 고상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하게 하신 이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정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적으로 통제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본성을 표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도 브레이크가 있다. 이동이 목적인 물건이지만 가지 않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달리지 않고 서 있도록 그 능력을 제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달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브레이크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이동이라는 것과 달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이 가진 본능들도 마구 잡이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동차는 늘 달리고만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주인이 어떻게 탑승해서 이동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여 행동으로 범하는 죄를 금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욕망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서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기적인 욕구 충족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만약에 사람에게 성욕이 없다고 해 보자. 어떻게 인류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대를 이어서 살아가면서 사람이 나고 또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성이라는 욕망과 또 그것으로 인한 희락을 주신 것이지, 그 희락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 기쁨은 성이 존재하는 목적이 달성된 결과지, 그 기쁨이 성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이 행동을 바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존재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함으로 나타나는 표현을 본질로 알고 살기 때문에 성적 기쁨이 성의 목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이다. 본질이 사람이 가진 육신의 행동이 아닌데, 그것을 본질로 보니 그것으로 지은 죄가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목적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존재의 목적을 모른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한계와 욕구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믿고, 하나님처럼 되려 하면 인간이 육신을 가진 것을 부인하려 하는 것이다. 육신은 자꾸 죄를 짓는데, 그래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이 세상의 법 앞에서 늘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오죽하면 그 아들이 세상의 법으로 십자가에 달리는 것 까지 보고 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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