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5-10절) 사람 본래의 모습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10. 14. 12:16 Writer : 김홍덕

사람은 누구나 분명한 한계와 본성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진 이 한계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시험해 왔다.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본성이나, 또한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육신의 한계가 선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생각의 시초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처럼 되려 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한계를 벗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 왔다. 그래서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영웅들은 하나 같이 비범한 존재들이다. 하늘을 난다거나,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다거나, 상상 못할 힘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웅들이 사람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설정은, 사람이 생각하는 삶의 위기를 탈출하려면 보통 사람 이상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사람을 구하고 영웅이 되는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기본적인 의식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영웅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선이고,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은 초라한 모습이라는 생각의 뿌리가 있는 것이다.


종교적인 세계 안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지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메시야는 보통사람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가득한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초라한 모습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만연한데, 신앙이 좋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본성을 제어하는 성과가 좋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40일 금식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벗고 싶어 하는 육신의 한계를 오히려 입고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이 그렇게 벗고 싶어 하는 이 육신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표현하는 존재다. 세상에서도 아들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고, 또한 그 아들의 삶을 보면 아버지의 성품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도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면서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벗고 싶어 하는 이 한계 많은 육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존재인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 연약한 육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겠는가?' 싶겠지만, 이 육신의 삶은 도화지와 같은 것이다. 이 도화지에 하나님이라는 화가가 그 생각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피카소의 생각을 보듯이 사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이 연약한 삶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흙은 모든 짐승에게 밟히고, 모든 것이 버려지는 하찮은 것이지만 여기에 씨가 싶기면 생명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되듯이, 사람도 자신들이 생각할 때는 이 연약한 육신이 짐승들에게 밟히는 흙과 같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흙이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듯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흙의 입장에서 보면 큰 건축물을 지탱하는 철골이나 시멘트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멘트나 철골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것이듯이 사람도 위대함을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에는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신 곳이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에서는 어떤 위대함도 기적도 없고, 연약한 육신을 가진 한 죄인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 그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흙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을 싹 띄울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우리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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