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유명한 말(씀)이다. 많은 기독교 학교 현관이나 학교 안에 새겨진 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큰 전환점이 싹튼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행위(Do)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존재(Be)에 관한 것인지 고민하도록 만든 촉매와 같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죄의 종노릇을 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진리는 자유케 하고 죄를 범하는 것은 죄에 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죄를 범한다는 것은 죄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죄의 종이라는 것은 죄에 구속되어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빛이라고 하셨다. 어두우면 아무 것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다. 맘대로 한다는 것은 한계를 벗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란 그 존재의 정체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 정체성을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죄다. 자유란 자신의 존재 목적에 맞는 의미를 맘껏 누리는 것, 그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은 자기 자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간첩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다. 그의 신분은 그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간첩이 우리 국민이 아니라는 그 죄가 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죄다. 심지어 죽어가는 우리나라 사람을 살려내도 그에겐 죄다. 그가 묶여 있지 않아도 간첩은 그 신분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것과 같이, 사람이 자기의 존재 목적을 벗어나 있으면 그의 모든 삶은 다 구속을 받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어두운 것, 흑암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빛이 없는 방에 들어가면 빛이 없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기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유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람의 존재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한치 앞을 모르기에 늘 걱정하고, 보험 들고, ‘이러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아니면 저렇게 했어야 하나?’라고 갈등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냐며 삶의 일들을 묻는다. 그게 자유롭지 않고 어두운 것이며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진리이신 것은 사람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을 알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왜 사는지?,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아는 것은 삶의 자유이다. 사람들도 뭔가에 대하여 밝히 알고서 그 물건을 다루는 것을 자유롭게 다룬다고 하는 말하는데 바로 이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사람에게 그 존재의 의미를, 삶을 마음대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을 지으신 그 의가 사람으로 표현되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의 존재 목적, 곧 진리를 알게 되기에 아들이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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