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6-21) 심판과 구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5. 12. 7. 14:31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시기도 했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 자체가 심판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구원이라는 것을 심판이라는 것과 연결하여 보면 심판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심판하러 오셨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것을 심판하시는지에 대하여 먼저 알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히 하나님의 의의 기준과 하나님의 법에 의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법으로 사람을 심판하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신으로 안다. 물론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하고자 하시는 사람의 삶의 문제는 돈이나 이성문제나 사업이나 자녀의 성공에 관한 것이나 건강에 관한 것이 일차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하고자 하시는 사람의 가장 크고 근본 된 문제는 바로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의외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면 되고(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정체성, 곧 하나님은 어떤 신인가 하면,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행동은 용납하고, 어떤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는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이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러하심은 심판과 어떤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존재의 하나님으로서 사람을 만나시기 원하신다고 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난다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르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과의 상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은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존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나님을 어떤 신으로 알 때 심판이 없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시기로 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만약에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면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여야 할 필요성을 아들을 보내서 구원하고자 하셨다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존재의 신으로 믿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람의 존재 목적을 가지신 창조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에서 구원하시려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어려운 문제에서 구원하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또 단순하게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심도 아니다. 이 땅에 살면서 육신을 가진 삶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법은 없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사는 삶을 저주로 여기고 그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여기는 사람은 육신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실패한 신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그렇게 삶의 문제 해결이나, 이 땅의 삶을 벗어 버리는 것이 구원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사람인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깨달음으로 이 육신을 가진 삶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이 땅에 살 동안 삶을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이다. 왜냐하면 이 육신을 가진 삶을 감사한다는 것은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이 육신으로 하나님을 표현하시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너무 영광스러움을 아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는 그 자체가 심판이다. 그것이 보이게 되고 또 나타나면 하나님을 하나님의 정체성과 다르게 믿는 모든 믿음과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심판을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그런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과 신앙과 믿음을 심판하신 것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은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지를 육신으로 보여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믿음을 가진 모든 것은 다 심판을 받은 것이 되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씀이 육신이 된 육신을 가진 삶을 살고 있다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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