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6-21) 구원의 모든 것은 빛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5. 12. 16. 15:36 Writer : 김홍덕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미지(형상)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사람을 지으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과 의가 사람 안에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과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나타내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으로 나타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예수님의 육신으로 보이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심이다.


그래서 그것은 일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정하셨다. 사람의 존재목적을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목적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보이셨다. 그렇다는 것은 그 기준에 합당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빛은 인식이라고 했다. 빛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목적대로 인식하고 사용하고 나타내기 때문이다. 빛이 없으면 제 아무리 잘 만든 것도 목적을 나타낼 수 없다. 보이지 않는데 무슨 소용인가? 마치 그것처럼 사람을 아무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아도 빛이 없어서 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냥 살아 있는 고깃덩어리뿐이다. 빛이 없다는 것은 존재의 목적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시고자 한 뜻을 알지 못하고 거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신으로만 믿고, 예수님의 모든 기적을 객관적 사실로 믿으려고 신념을 가지는 것을 믿음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빛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제대로 모르니 컴퓨터를 앞에 두고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컴맹이라고 하듯, 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목적을 모르는 어두운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고 수용하는 것은 여기서 나온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은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주심이 은혜이기에, 사람은 자기가 자신을 지은 것이 아니므로 존재의 목적을 사람 스스로 알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은혜고, 믿음은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즉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고, 그것이 바로 나의 존재의 목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된 사람이 바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과 믿음의 모든 것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에 있다. 즉 빛을 아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 사람이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사는 인생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두운 곳에 빛이 비췸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흑암과 혼돈 가운데서 빛이 있게 된 것이 그것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이것이 인생에게 유일한 진리다. 인생에게 그 존재 목적에 관한 것이 진리가 아니면 뭐가 진리이겠는가? 그래서 정말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빛, 곧 예수님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살면서 겪는 당면한 문제에 매몰되어 그것이 본질로 아는 것은 마치 컴퓨터를 사서 매일 닦고 광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어두움이고 심판을 받은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컴퓨터를 활용도 못하고 오히려 매일 닦느라 종노릇하는 것이니 그것이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도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고 육신의 일만 신경 쓰는 것은 마치 자동차나 컴퓨터를 사서 타거나 계산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매일 닦고 청소하는 노동의 종노릇 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심판 받은 것이다. 존재의 낭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정죄, 곧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이것인 것이다.


반면에 진리를 좇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러 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니 진정한 진리를 좇았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를 좇는 사람들은 그 진리의 행함을 나타내려 할 수 밖에 없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그 생명의 본성(DNA)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시 생명의 모든 것,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이다. 


예수님을 좇아 빛으로 온 이들의 행위가 나타난 것이 바로 성경에서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것은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생명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나 항상 쉬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념으로는 항상 할 수 없다. 빛이 비취면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목적대로 쓰는 것이 그것이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면 그 방에 있는 모든 것을 존재의 목적대로 사용하게 되는 것과 같이, 인생이 그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육신의 삶의 모든 것을 그 목적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이고, 빛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뭐가 있겠는가? 이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인생이 존재의 목적대로 사는 것. 바로 그것이 구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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