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믿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냐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정체성과 다르게 그 분들을 대하는 것이기에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사람의 문제나 해결해 주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이유,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가장 온전한 이유는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마땅한 믿음의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된다는 것도 또 왜곡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인생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신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같아진다는 것 역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왜곡된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원죄로 규정하신다. 이런 문제의 근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안목이 육신의 삶이라는 현상계에 맞춰진 까닭이다. 이 물질세계는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형식이기에, 이렇게 표현된 근본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기에, 그 눈에 보이는 세계에 일어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또 그러다보니 그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 생각하며, 그런 이유로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이 진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고 성령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어긋난 생각의 궤는 단 한 가지를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 가진 이 육신에 대한 개념, 그것이다. 이 육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이 다 틀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는 이 육신을 가진 삶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준으로 보니 이것저것 다 부족하고 연약하여 부정하는 것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도.


이러한 생각은 모든 죄의 근본이다. 사람이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보니 인간의 육신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원초적인 죄악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거하셔서 그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셨는데 사람은 하나님 거하시려는 육신을 가진 자기의 삶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그 안에 자신들이 생각할 때 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영광과 공로와 소유와 더 강한 육신의 능력이 가진 승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사람이 그렇게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교회에 와서 떼를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세상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지지해 줄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거나 또 자신과 경쟁하는 동일한 육신을 가진 존재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하면 이단이라고 하고 불경스럽게 여긴다. 바로 그 모습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유대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면 놀라기나 할지…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육신을 가진 삶은 너무 온전한 것이라는 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믿는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이 육신을 가진 삶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육신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은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나 예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과 같이 천둥 번개를 일으키고, 예수님과 같이 죽은 자를 살리고, 바다 위를 걷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눈에 보이는 삶에 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서 사람이 겪는 문제를 이겨내고 해결하고 넘어서며 컨트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한다고 자기 삶의 문제를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해결하려 하겠는가? 그냥 열심히 살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고 또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다. 하나님 노릇, 예수님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내용이 되어 형식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이 되는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 것이 바로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잊었다면 몰라도 그것을 믿을 찐데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고 사람으로서 최고의 영광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것, 곧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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