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사도의 권면에는 상태에 대한 조건이 있습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고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이 바울사도의 권면이 가진 구조입니다. 성경을 지키려면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듣는 사람이 그 ‘누구’가 아니라면 먼저 그 상태부터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하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생각이 다르듯, 사랑도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열거한 것들은 성경 밖에서 이야기 한다면 어느 하나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온전한 사랑의 모습들에 또 어떤 사랑이 있어야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그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사도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먼저 사랑하셨다고 하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조성하실 때는 그 창조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피조물에게는 당연히 존재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에게 보이신 사랑은 죄는 사람이 짓고 벌은 예수님을 받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목적도 알지 못하고 사는 그 자체가 아버지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뜻하신 목적을 벗어난 죄 가운데 사는 것이기에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므로 육신 가진 인생들이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드리셨기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라고 하는 자격 조건부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려서 하나님께서 육신 가진 인생을 주신 의미를 알게 하심과 같이 그리스도를 인하여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된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심과 같이 자기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종과 같이 섬기는 사랑을 보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같은 이유로 이 땅에 보내셔서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사람에게 보이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하심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사랑이고, 그 사랑의 내용은 육신으로 자기 의에 가득한 이들을 종과 같이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보면 바울사도의 권면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이라는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수인 것은 그 수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두들 세상에서의 높은 곳으로 향해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것에 전혀 관심 없으신 하나님의 힘마저 빌리려는 사람들 중에 바울사도가 지칭하는 성도들은 아주 적은 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울사도의 권면을 자기 삶의 명으로 삼고 살고 규범으로 삼고 살려고 한다면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께서 받으셨기에 사랑을 입었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이 주어진 목적과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그 의미가 다름이 아니라 세상에서 낮아지는 것이더라는 것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 곧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과 같이 모두들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가야 인생이 성공이라 여기고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능력 얻기를 구하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성경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주장 앞에 자기 육신으로 종과 같이 수고하므로 피라미드 꼭대기로 가던 사람들의 눈을 돌리게 하는 사람들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란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니 그 삶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이 자기 마음에 순종되고 그 순종을 인하여 성령께서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같은 본성이 자기 생명의 본성이 된 사람이니 그 사람은 살아가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성경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본성만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음행으로 여기시는 것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의 권면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이라는 그 하나하나를 이겨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자기의 본성이 아닌 존재로서의 삶의 모습에 대한 교훈이고 훈계인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사도의 이 권면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령 안에 생명으로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사람이니 노력할 뿐’이라는 변명으로 관철된 삶은 살 수 있어도 이 권면이 자기 삶이 되는, 사랑 가운데 행하는 삶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근원적으로 이 모든 말씀은 먼저 성도가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본질적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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