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유혹과 시험에 드는 것을 늘 경계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시험하는 존재는 항상 마귀, 사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온한 생각이 들면 속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관습은 마귀가 자신을 시험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잘 하려고 하는데 마귀는 시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틈만 보이면.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을 부정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 자기 육신의 상태 그대로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욕심과 음란한 생각이 있는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원적으로 사람을 부정하게 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순입니다. 즉 마귀가 시험하기 전에 마귀가 시험해서 이루고자 하는 상태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신앙생활 과정에서 다시 마귀가 유혹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완전한 모순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물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마귀가 방해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났다는 것은 그것으로 온전한 상태인 것입니다. 사람이 내어난 다음에 팔을 붙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모습과 정체성이 자신이 태어난 모습, 자기 생명의 본질인 것입니다. 지금 육신을 부정하게 여기고 있는 생명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생명이거나 거듭나서도 그런 생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이미 육신의 삶에 대한 관점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 보면 사망 가운데 있는데 그것을 아무리 마귀 사탄이라고 해도 무가치한 것에까지 유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가 또 성경이 마귀의 유혹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육신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 부정함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대한 유혹이 아닙니다. 육신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성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마귀의 유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유혹이라고 여기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선악의 기준에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가 가진 선악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으로 볼 때 사람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스스로 마귀의 유혹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즉 그들에게 마귀는 그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과 다르게 스스로 가진 선악의 기준에서 비롯된 생각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마귀의 유혹은 육신이 성경을 지키려고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육신이 가진 본성에서 비롯된 욕심이나 정욕이나 성욕과 같은 것으로 방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마귀의 유혹을 받는다고 하려면 최소한 거듭난 생명이어야 합니다. 거듭나지도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성경(신구약 어디라도)을 지켜 의로워져서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유혹입니다. 어떤 기도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듯 어떤 마귀의 시험도 금식한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의 범주를 벗을 수 없습니다. 사람,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인정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자기 인생의 목적임을 아는 거듭난 사람에게 있는 마귀의 시험은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 그 안에 다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의 이 권면도 그 앞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함이 충만하게 되는 것을 간구하고 권면한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한 유혹이 마귀의 유혹, 마귀가 노리는 틈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유혹은 참으로 교묘하고 끊임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 그것을 위하여 성경을 지키려는데 육신 안에 있는 본성들이 방해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고서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순종하느냐는 삶의 문제에 있어 유혹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고 보여주고, 추구하여야 한다는 그 생각이 마귀가 노리는 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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