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의 권면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에 이어서 도적질하던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사람, 자기가 먹은 선악과에서 비롯된 선악의 기준에 합당한 행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연결이 도적질과 같은 행동이 마귀의 유혹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앞서 길게 설명하였습니다.


성경은 행위 규범에 관한 말씀이나 책이 아닙니다. 존재 규범에 관한 말씀입니다. 도적질이라는 것도 물건을 훔치는 도적질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가장 큰 도적질은 자기 인생을 훔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조성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적질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 큰 도둑의 작은 습관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도적질하던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 의로 살던 인생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신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즉 자기 인생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죄가 자기 자리를 벗어난 것이라는 의미인 것을 생각해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도적질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목적을 가지고 지으신 인생이고, 그렇게 분명하게 주인이 그 목적대로 살기를 바라시면서 주신 삶을 뻔뻔하기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육신으로 보고 듣고 생각한 가치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그것에 맞추어서 사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이 하나님 아들, 곧 그리스도와 인생의 목적에 대한 유혹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도적질을 단지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자 인생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둡고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인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본질적 도둑인데, 그들이 모여서 역시 자신이 만들지 않은 세상의 물건을 훔친 것을 도적질이라고 하는 것은 해적들끼지 서로 도둑이라고 하는 멍청한 짓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기 인생을 훔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과 같이 다시 도적질 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먼저 인생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자기 삶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듭남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내 인생을 주인인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기본적인 양심만 있어도 인생이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도적질, 성경이 말씀하시는 도적질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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