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말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욕을 하는 것이나 비방하는 것 또 넓게 보면 거짓이나 그릇된 선동과 같은 것들과 저주와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말라고 한 것에서 볼 수 있듯 말은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속에 있는 생각, 즉 말하는 사람이 가진 의가 표현되는 형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나오는 것을 인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더 엄밀하게 보면 더러운 것이 들어 있는 사람이 그 더러운 것을 말로 표현하므로 그 사람이 더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확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말로 인하여 말하는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본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러운 것’은 어떤 것인가? 늘 언급하는 것과 같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생각과 의가 기준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가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러움과 덕, 선함은 모두 하나님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의 욕이나 더러운 말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더러운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고 일반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인이 욕을 하면 안 된다.’고하는 말들은 예수님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게 더러움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입으로 뱉은 말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핵심이고 본원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그 사람 안에 있으면 예수님과 같이 ‘독사의 자식들아’와 같은 말을 해도 선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것이 없는 인생을 살면서 평생 도덕군자와 같은 말만 한다고 해도 그것은 더러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말라고 하신 말씀에 이어서 엡 4:29절 끝에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은혜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주시는 것이라고 많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이유를 아는 것이라고. 


따라서 바울 사도의 이 권면은 욕이나 저주와 같이 말 자체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혐오를 느끼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결국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시고 주신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는 말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말을 하려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신 목적이 생명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사람에 생명으로 있어야 비로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자기 안에 있어야 비로소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곧 더러움이고 그 상태에서 하는 모든 말은 다 더러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말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생명이 그 속에 있느냐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는 사람,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고 장성한 사람은 그 생명의 본성대로 하나님이 인생을 주신 목적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자기 생명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은혜를 베푸는 선함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말하는 것은 듣는 이들에게 그 이상의 은혜가 없는 것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