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먼저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는 것이고 다음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나야 생명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의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나,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보상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노력에는 많은 것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대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한 가지는 성경대로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투자지 순종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바가 있어서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행동은 그것으로 구원을 받거나 그 행동이 축적되어 세상에서 사업이 잘되고 건강하고 평안하며 죽어서 천국가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 것을 담보하는 조건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라’는 말씀은 그런 생명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 생명이 되면 그렇게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그리스도의 생명, 곧 구원을 얻어서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살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 곧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순종이면 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요건이자 유일한 요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뜻을 흙으로 지음 받은 인생이 순종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존재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그 존재 목적으로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존재의 목적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으로 볼 때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목적 안에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이라고 늘 말씀하였습니다. 이 생명이 없으면 성경은 지켜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릇에 불과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100% 지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개 노릇을 아무리 잘해도 100% 개가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는 것이 성경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태초가 성경의 첫 머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사는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존재의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어야 더러운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말은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니 속에 깨끗한 것이 있으면 더러운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끗함과 더러움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의,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시는 생명의 존재 여부입니다.


또한 그 생명은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노력하려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갈등이자 노력과 수고인 것이지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인하여 신앙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람이 사람다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때론 허무한 것 같은 것을 지키고 희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신선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동일한 육신으로 같은 세계에 살고 이전에 자신도 가졌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을 사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그 본성에 충실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바울 사도가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노력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지 못한 자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나, 아직 이르지 못한 천국에서의 금은보화를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성령으로 잉태케 된 생명인 그리스도의 본성을 좇아 살아가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본성대로 살고자하는 것에 대한 저항 앞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 본성, 사람들이 육신으로도 자기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먼저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장성함이 충만하기를 권면 받는 이들의 말씀이라는 것과, 노력으로 보이는 이 말씀은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이 이끄는 것에 순종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삶 속에서 힘쓰고 애쓰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는 노력이나, 성경대로 살아서 자기 안에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이끄는 삶에 자신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언제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을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끄는 본성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삶을 살라고 바울 사도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니 도둑질 하지 않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끄는 것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면 그런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사는 세계에 종속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조심하고 교회에서 근심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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