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씀하시는 아는 것은 자기 안에 체휼된 것이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나타나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둘 다 자기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본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는 것은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은 이들에 대하여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것과 같이 영생을 얻은 사람들도 하나님과 또 예수님과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7:22)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니 사람이 기도하면 불치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뱀 혓바닥소리를 내면서 성령을 운운하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콜라병에 콜라가 담겨 있어 사람들이 그 병을 가리키며 “콜라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의 표본은 바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듯,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예수님과 같은 법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믿음은 순종이고 수동적인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자 육신을 가진 삶의 의미인 것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시며 보이신 의와 뜻이 자신의 운명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것은 체휼되고 자기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이신 것을 순종하므로 자기 안에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므로 생명이 되고 육신으로 살아가는 삶의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가지게 되므로 그것이 바로 체휼이고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인생의 존재 목적과 운명에 순종한 믿음이 생명이 되게 하시면 자기 안에 그 생명의 본성이 있어 그 생명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알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사람인 존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사람이란 어떤 본성을 가졌는지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법을 진정으로 안다면 단언컨대 성경이 신학이란 학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좀 더 알기 쉽도록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그 말씀의 뉘앙스를 각 사람의 현재의 시점과 연결하는 것을 위한 다소간의 공부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신학을 한 사람에게만 자격을 줄 정도로 격을 달리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이유는 성경 어디에도 없는데, 그 근거도 없는 이론과 생각을 가지고 오히려 성경을 공부하는 모순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사람에게 두신 의와 뜻이 육신을 가진 자신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순종한 사람의 믿음을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하시므로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잉태되고 본성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성한 믿음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성령의 열매라고 하며, 생명의 법이라고 하고, 성령께서 잉태케 하신다고 하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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