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16) 만물이 충만한 사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6. 26. 14:03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서 내려 오셨다가 올라가신 것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 그 간구가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만물이 충만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물이 충만해지는 곳, 어디를 만물로 충만하게 할 것이냐는 바로 사람의 심령 안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그 사고 안에 우주를 넣을 수도 있고, 좁쌀 같은 마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릇과 같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고, 그 크기도 의외로 무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겠다는 것도 사람을 이런 존재로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로 충만하여지기를 간구하고 또 예수님은 그 충만을 위하여 땅에 오시고 또 올라가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무엇이라도 넣을 수 있는 사람 안에 무엇인가를 충만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 역시 사람 안에 충만하게 넣을 것을 가지고 오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안에 충만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바울 사도의 간구에서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고 하고, 그 간구의 최종적인 바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충만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맥락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속사람이 무엇이냐에 따라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릇과 성전과 같이 그 안에 무엇을 담고 모실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담을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것입니다. 온 우주에 대한 개념과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남는 콩 한 쪽도 누구 주기 싫어하는 좁은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란 존재에게 그리스도가 충만하기를 구한 바울 사도가 이어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신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을 때 가지신 창조의 목적이 육신이 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만물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그 뜻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만한 사람이 곧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씀도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말씀입니다. 아들이란 아버지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와 성품을 표현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하고, 사람만 하나님의 생기를 넣고, 선악과 앞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그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가 속사람 안에 생명이 된 사람입니다. 그것은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된 목적과 의가 자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만물이 충만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속 심령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만물이 충만한 사람인 것이고, 만물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창조되었고, 경영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게 안 보이면 ‘하나님이 세상이 점점 죄가 관영해지고 있으니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이 죄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기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기 안에 가진 대로 세상을 보는 존재임을 생각하면 세상이 타락한 것으로 보인다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타락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세상을 잘못된 것으로 보는 그것이 타락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형통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나타나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을 위하여 세상과 만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만물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 하나님을 그렇게 찬양하고, 세상이 자기 이익을 좇는 것을 인하여 자신이 육신으로 종과 같이 그들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을 자기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세상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는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보이면 그 사람은 만물이 충만한 것이고, 그리스도가 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야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고, 자기가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서로를 대하므로 다투는 그 세계는 분명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것 없는 세상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다들 자기 선악의 기준과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사는 중에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뜻을 자기 삶으로 순종하므로 자기 선악의 기준을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선악의 기준 앞에 죄인과 종과 같이 육신으로 섬기고 수고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그 사람들이 검은 도화지에 그려지는 흰색 그림과 같이 나오는 것을 바라심으로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안에 충만해지는 것이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만물의 이치가 자기 안에 열리는 것이니 만물이 충만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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