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자신의 간구 곧 그리스도로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고’라고 하신 것은 사람을 지으시고 인생을 주신 뜻대로 행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먼저 글에서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권면대로 행하면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4장 3절에서 아주 눈에 띄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평안으로. 그러면 성령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하나 되게 하셨을까? 언뜻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서로 용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나타나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행하는 근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에서 서로 용납하라고 했으니 서로 용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그런 노력이 효과적으로 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말을 선하게 하는 규칙을 정하고, 봉사의 당번을 정하고, 기도하여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서로 용납하게 되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의지와 신념으로 성경을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게 이 말씀을 봅니다. 다른 말씀도 물론.


그러나 그런 모습, 즉 성경에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각종 제도와 법과 규칙을 만들어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율법적인 신앙생활이고 그렇게 지키려는 말씀은 신약이든 구약이든 무관하게 율법인 것입니다. “어떤 구절은 율법이고, 어떤 구절은 복음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신구약 무관하게 다 복음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율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정말로 어폐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서 얻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자기 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간구와는 달리 율법적인 신앙이 그런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바울 사도의 간구가 나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경을 율법으로 받은 사람들이 신념으로 노력하는 노릇에 불과한 것입니다.


흔히들 하나 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은 현상이지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다름 아닌 성령의 하나 됨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면 앞서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는 것은 본능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벗어나는 것이 성령의 하나 됨으로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육신을 가진 사람을 하나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일이신 것입니다. 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아는 것은 모두가 어려워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있고, 그것이 육신 가진 사람과 하나가 되면 그리스도이며,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인생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삼위 하나님은 하나이신 것입니다. 하나의 뜻하신 바가 뜻이 그대로 있으면 성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되면 그것이 아들이니 성자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렇게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께 그 뜻을 나타내시려 지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아들이 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이자 뜻이며 사람을 지으신 의가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시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성육신(成育身) 된 존재입니다. 그러면 그 삶은 당연히 하나님의 성품과 의와 뜻대로 살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데 다르게 살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 없는 것을 연구하고 시도하니 성경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육신을 가진 인생 그 둘을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명하신 ‘~~하라’는 말씀들이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만 있으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도 너무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앞서 언급한 삼위일체도 상식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 사도의 간구와 같이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안에 있어 그것이 시간과 함께 절로 충만하게 되고, 겸손하고 온유하므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도 본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말씀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살기만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 즈음에 이르면 예수님의 짐은 수고하지 않고 가벼운 것이라고 하심도 몸소 체휼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나지 않음보다 감사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심 그것에서 비롯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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