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의 간구는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토록 무궁하시기를 구하는 것으로 일단락됩니다. 영광이라는 것이 누차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정체성이 나타나고 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것은 지극히 제한된 조건 안에서만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물론 그 조건은 범위가 좁다는 것이 아니라 좁은 문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무궁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영원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과 같아서 실로 많지 않기 때문에 영광이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일면 너무 쉬운 것이지만 실상은 너무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서면 바로 뒤에 있는 것을 돌아서지 않고 계속 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려면 하나님의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없는 것을 나타내거나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본성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 무궁히 나타나기를 간구한 바울 사도의 간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에 그 간구함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또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간구가 어떻게 성취되는지, 그런 간구가 이루어진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4장 이후에 설명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보려고 하는데 먼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간구가 이루어진 삶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육신의 문제와 세상의 문제를 구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본성은 세상의 가치 앞에 자신이 종과 같이 또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는 본성이지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바울 사도의 간구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 본성 없이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신념이나 의지 가지고 행하거나 혹은 닥칠 재앙을 두려워서 얼마 정도는 할 수 있지만 항상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같은 것이 노력한다고, 신념을 가진다고 자기 본성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마저 속이면 한 마디로 하나님 세계에서 가망이 없습니다. 그것이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간구라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의 본성이 생명이 된 사람은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이 곧 생명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자기 밖에 있는 것을 구하게 됩니다. 돈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경제적 부유함을 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온유와 사랑과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이 성령으로 생명이 된 존재가 아닌데 성령의 열매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사과의 유전자를 가지지 않았는데 사과를 열매로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데 그리스도의 본성을 나타낼 법은 없는 것입니다. 시늉이나 흉내를 열매로 착각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 노릇’이라고 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이치입니다. 부르심은 에베소서 1장에서 말씀하신 예정하신 뜻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 안으로 사람이 순종되기를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뜻을 알고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그 뜻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이고 부르심이며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육신을 주신 이유를 깨닫고 그것이 자기 삶의 목적이자 의미라고 순종한 사람은 성령께서 그 순종함을 생명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잉태한 생명이 되고,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이 가진 본성이 있을 것이며 그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가 되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밀히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해서 그 부르신 목적이 이끄는 삶이 되고, 그 목적을 기준으로 생명을 가늠하시는 하나님 앞에 생명 가진 존재로서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은 당연히 그 부르심에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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