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역설적일 수 있는데 아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하여 머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사람이기에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생명임을 압니다. 그리고 생명이 자라고 그 생명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것도 압니다. 사람이 내일도 사람으로 숨을 쉴 것이라는 것과 내일이면 하루 더 산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 듯.


성경의 모든 말씀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드러난 것은 육신을 가진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믿느냐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온전히 아느냐의 문제이고, 믿느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인생이 되는 것을 믿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을 힙 입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온전한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정체성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바로 아는 것이 자신에게 순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순종과 수동적인 이유가 또 다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대한 방향성이 반대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뜻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 여깁니다. 하나님을 위한 자기 계획이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이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알고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목사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자신이 규정하고, 그 생각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고, 목사가 되려면 성경을 어떻게 지키고, 어떤 마음가짐과 행실로 살 것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입니다. 설사 구원도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하나님과 다르게 생각하는 생각이 믿음이나 아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산 존재냐 아니냐는 오직 그 목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생명의 주관자라고 하심도 육신의 호흡에 대한 주관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목적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호흡이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사람 눈에 생명의 본질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목적을 위해 주신 것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은 그 목적이 온전하게 성취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든 목적이 사람에게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주관하는 것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놓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함 이외에 하나님 아들이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 구원 받을 이름(정체성)이 없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삶을 보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삶으로 온전히 나타난 사람, 목적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의 목적이 자기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기 삶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로 알고 그것에 내어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생명이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국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이라는 세계가 열린 사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이기에 장성함이 있고, 자라고 충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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