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과의 언약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5. 11. 3. 14:54 Writer : 김홍덕

민족에 대한 언약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너와 네 자손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온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 한 개인과의 언약이라 할 수 있다면, 자손들, 모래 보다 많은 자손들도 이 땅을 얻을 것이라는 언약을 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역시 같은 언약이고, 또한 순종해야할 말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아브람이 애굽을 거쳤듯이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을 거친다. 더욱이 예수님도 애굽을 거친다. 그 기간은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 여정, 그리고 교회의 신앙 여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간에 의미를 둔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종살이에, 40년 광야를 거쳤다는 점인데, “4”라는 숫자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면 아브람의 고향 갈대아 우르의 본성, 곧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아는 사람의 가치관이 처리되는 여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굽을 거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신앙 여정이라는 것이 세상의 가치관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으려면 세상에서 한 번 놀아봐야 한다는 식의 관점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이 자기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람도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갔고, 야곱과 그의 가족들도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갔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허함이 들 때 먼저 세상에서 그것을 채우려 하는 본성이 있는데 그것이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든 나라와 민족이든 다 같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은 다름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곧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브람의 자손은 아브람의 정체성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들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브람의 신앙이 육신이 된 존재라는 것이다. 아브람이 그렇게 자손을 얻었다는 것은 아브람의 씨에서 비롯된 자손이란, 아브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씨)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생명이 된 또 다른 사람들이 바로 아브람의 자손이요 믿음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오늘날 전도라고 한다. 하지만 보통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교회에 데려다 놓는 것을 전도라고 한다. (물론 신앙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서 그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함께 오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진정한 전도는 하나님의 의가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본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다시 들어와서 생명이 되어 다시 그도 하나님의 의가 삶으로 표현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잉태하심이고, 그것이 전도고, 거듭남이다.


아브람의 자손들이라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의가 아브람을 통해서 표현되고, 아브람을 통해서 표현된 하나님의 의를 듣고 본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다시 생명이 된 사람들이 바로 아브람의 자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브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다시 자기 생명이 되어서 아브람이 그랬던 것과 같이 자기 안에 있는 애굽을 사랑하는 가치관이 처리되고 롯을 위대함을 추구하는 자들에게서 구해내듯이 위대함을 좇는 세상을 다스려내는 생명이 된 사람은 누구라도 아브람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보다 먼저 이 생명이 있으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람)보다 먼저 계신 것이다. 아브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삶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한다는 그 계획(LOGOS)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설계도고 아브람은 그 설계도로 먼저 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아브람과 같이 육신의 삶으로 표현해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 아들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을 보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브람의 자손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이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바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육신을 통해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그리고 그 이삭이 야곱을 통해서 열두 아들이 나오고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고서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도들이 그것을 삶으로 전하였고 그들의 삶과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심령 안에 그들이 본 사도들의 삶과 들은 말씀이 다시 생명이 되어 그들의 삶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삶이 된 것이다.


그것이 전도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요 생명 공동체인 것이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보다,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은 자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아브람의 자손이기에 그들의 삶도 아브람과 같이 애굽을 거치고 나오는 것이다. 애굽을 거치고 나온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증거요 운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브람과 같이 애굽이 처리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는 당연히 애굽이 처리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 모인 생명이 애굽과 같은 세상을 사모하고 그것을 본질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그 공동체 안에는 애굽을 처리하는 과정이 역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처리해내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브람에게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약속이 아니라 생명의 본성이라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낸 아브람에게서 나오는 자손이니 당연히 아브람이 애굽을 거쳐낸 속에 있는 생명이 표현된 자손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해 나가기로 합니다. 창세기로만 본다면 야곱의 때부터 교회에 관한 이야기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서 완성되지 않는 부분을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자리일 것입니다. 신앙에서 교회라는 공동체가 삶 안에 있을 때에 채워지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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