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45) - 선악과와 교회(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4. 5. 16:22 Writer : 김홍덕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힘들게 여겨지는 것은 같은 것을 반대쪽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보통 신앙인들에게 있어 신앙생활은 참 어려운 것으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시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렵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되고 있는 선악과의 문제 그 자체 같다. 즉 같은 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것이 바로 선악과의 문제인 것이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즉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보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보는 안목을 가지기가 힘들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선악과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보는 그런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참 자유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사람이라서 그래서 보여지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이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부끄러운 것인데, 어떤 관계 안에서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면 그 공간, 그 관계는 그야말로 안식을 주는 관계일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도 바로 그런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가정>이라는 기초적인 공동체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자연적으로 접하는 관계, 공동체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정은 그 구성원을 사회적인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약하다. 판검사 아들이 더 이쁘고, 노동하는 아들은 보기 싫은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그런 공동체와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그런 공간으로서의 자리를 점점 이탈해 가고 있다. 다른 것 볼 것 없고, 목사를 뽑을 때 학력과 경력을 보고, 잘로를 선출할 때 사회적 지위를 보고 뽑아 임직식 때 과도한 헌금을 내야하는 구조 그것으로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즉 사회적, 세상적 기준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의 자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한마디로 교회가 큰 교회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인 기준을 기반으로 잘 되는 교회를 꿈꾸고 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현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그 한마디다. 수능 시간표에 맞추어 기도하는 것이 바로 그 철학 위에 있다.


교회가 선악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점점 태릉선수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즉 사람의 신앙과 삶을 판단하고 그 가운데서 선한 것을 발라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선한 기준이 세상에서 온 것이라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마음이 들게 하는지..... 


사람의 선은 발라내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야 하는 것


선악과의 문제가 교회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안식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사람에게 선을 발라내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선은 우러나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즉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이고, 그 연약함을 개조하기 위하여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가진 그 모습 그대로를 감추지 않아도 쉴 수 있어야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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