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42) - 선악과와 영지주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17. 10:56 Writer : 김홍덕

반면에 이와는 달리, 사람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다. 그러니까 이 육신의 부끄러움은 감출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대안으로 육이 아닌 영만 정결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다.


언뜻 보기에 영지주의는 방탕한 것 같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사실은 개인이라는 정체성의 성결,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부끄러움을 감추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그저 영(靈)만 경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예 부끄러운 육신은 구원의 대상도, 또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지주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는 관점 역시,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십자가가 별 게 아니었다는 식의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이면에 사람의 육신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영만 성결하면 되고, 고백만 있으면 되지 육신의 삶이 경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와 율법주의는 어떻게 보면 뿌리는 같은데, 반응이 다른 것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율법주의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육신이 각종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영지주의는 인간의 구원이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국한된 것으로 규정하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즉, 영지주의는 사람의 육신은 악한 것으로 반면에 영은 선한 것으로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당연히 육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기준이다. 즉 그것을 악한 것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역시 사람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여 규정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어떤 형태든 사람의 육신에 대한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동일하게 육신을 악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악한 것을 제하기 위하여 성경을 행동에 대한 지침으로 받아서 그것을 지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부류는 악한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즉, 영지주의나 율법주의나 동일하게 육신을 부정하고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사람의 육신을 악한 것으로 보고 또한 어떤 선한 기준을 정립한 다음, 그것을 선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그것에 도전하려 한다. 그 도전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부와 명예에서부터 종교적인 신비함이나 경건함까지 다양하다. 그런 모든 것은 율법주의고, 반면에 육신은 구원의 대상이나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포기하면 영지주의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반응들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만드신 육신으로 삶을 사는 인간에 대하여 사람들이 맘대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규정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선을 추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을 뱀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꼬였던 것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 때문에 이 육신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이 정한 선의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육신의 삶을 그런 것에 사용하게 두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육신의 삶을 주신 것은 이 육신의 삶의 어떤 부분은 악하고 반대로 또 육신이 어떻게 되어야 선해진다는 생각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삶 자체를 감사함으로 받고, 아담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과 같이 이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창조의 목적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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