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33) - 선악과는 필연적인 것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4. 09:26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성경을 자기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선악과에 대한 말씀을 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보고 그 가운데서 선한 것만 취하여 사람을 그 선의 관점에서 경건하게 만들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성경을 주관적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관점은 당연히 자기의 삶을 선악과를 먹은 인생이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해 가는 것은, 고백적인 관점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로 인하여 사람들이 범죄 할 것을 알면서 선악과를 만들었는가?'>하는 문제의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는 자기 고백적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것은 해석에 어떤 방향이나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1"이 있고, "2"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자기 고백적 관점이 먼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즉 자신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이라는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심문 받는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그것처럼, 선악과 역시 자기 고백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과가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의 문제를 하나님과 사람의 존재와는 별개의 문제로 본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이어 세상을 만드시고, 또 사람을 만드신 그 모든 경륜과 별개로 또 하나의 과정과 사건으로 본다면 '미리 아셨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선악과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과정,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창조와 절대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하나님의 천자창조 과정의 한 요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시적이고 동일한 것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선악과라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으로 그 형상 곧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그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악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육신이라는 형식이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분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니 선악과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악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육신이라는 형식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이미지를 형상으로 표현 하면서 시작된 동시적 개념인 것이다.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니 하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시는 순간, 이미 선악과의 문제는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내용인 의를 사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형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순간 사람이 악하게 보는 육신이라는 것이 함께 생겼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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