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32) - 고백적 관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3. 3. 16:16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오직 하나, 하나님과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사람이라면, 삶과 생김이 어떠해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표현 양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시거나 부족한 것을 만드시는 분이 아닌 절대자임도 함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근간이기도 하고, 교회의 존립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즉, 교회라는 곳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관점으로 사람을 보는 곳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그 사람이라는 그 하나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벌거벗은 아담을 보고 하나님도 안식하셨는데, 사람이 그것을 보고 쉬지 않고 나무라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보다 뛰어난 존재거나 아니면 하나님 앞의 반역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사람은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 만들어 두셨는데, 몰랐을리는 없으니 왜 알면서 만들어 두셨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고백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노종이 아들 이삭의 베필을 얻기 위하여 메소포타미아 나홀 성에 이르기 전에, '소녀에게 물을 청하였을 때, 약대에게도 물을 주면 그 소녀를 하나님께서 주인의 아들의 베필로 주신 것으로 알겠다.'고 하고 갔을 때, 리브가를 만나게 되고 리브가가 그 종의 마음과 같이 약대에게 물을 주었기에 이삭의 아내가 되는 말씀이 창세기 24장에 있다. 이 말씀에서 그 노종에게 예언의 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홀 성으로 갔던 간에, 리브가를 얻는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고백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을 고백적인 관점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정론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정론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듯이 사람의 삶과 인생의 모든 것을 미리 다 짜 놓고서 그대로 경영하신다는 것을 예정론으로 알지만 그것은 아니다. 진정한 예정론은 사람이 자기의 삶을 살고 보니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이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예정론이라는 것이다.(예정론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 예정)





'왜 이런 고백론적 관점에서 성경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한다면, 사람들이 자기 고백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남의 이야기, 남의 나라 이야기 하듯이 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성경을 믿는 믿음을 성경의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절대적인 오류에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오류에 매몰된 사람들의 질문들을 들어 보면,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나요?", "예정되었다면 굳이 사람이 애쓰면 살 필요 있나?" 같은 3자적 관점의 질문을 한다. 즉 성경이 자기 이야기가 되지 않아 3자적 관점에서 보면 도올 김영옥 교수처럼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일 뿐이라고 하게 된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객관적인 입장에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자기와 무관하니 아무렇게나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나>의 이야기이다. 주관적인 나의 이야기가 아니면 성경은 그냥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선악과에 대한 모든 이야기도 자기의 고백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학적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단언컨데 절대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선악과의 문제만 아니라 성경의 어떤 말씀도 그렇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 했을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환호하던 이들이 수 없이 많았지만, 오직 예수님을 못 박는 자리에 있던 백부장에게는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이, 곧 자기의 이야기로 받아졌고, 예루살렘 성의 사람들은 정치자로서의 예수님만 알았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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