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열매는 노력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노력에 앞서 먼저 열매를 맺는 생명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나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설교하는 것과 같은 것은 모두 생명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소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눈이 멀쩡하기에 소경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시험문제도 눈 뜨고서 읽고 있어도 무엇인지 모르면 그것이 소경인 것과 같다. 성경에서 소경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이 눈을 뜨고 살고 있지만 정작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으로만 봐도 그렇다. 분명히 <열매>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노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소경이다. 또한 어리석음이다. 또한 열매의 세계인 생명의 세계에서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망 가운데 있는 존재와 같다. 보는 것이나 생명이나 모두 봐야할 것을 볼 때 눈을 뜬 것이고, 생명이 가진 본성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명을 이야기하는가? 그 많은 순간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생명의 본성만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을 생각해도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생명 없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므로 나타나는 덕목들도 모두 열매인 것이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언뜻 그 덕목들이 달라서 다른 것 같지만 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일한 생명에서 비롯된 열매이기에 다 같은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것은 그 생명의 풍성함과 열매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열매라는 말이 뜻하는 생명의 법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기에 이루어내어야 하는 것, 절제와 인내와 같은 덕목을 믿음으로 쌓아가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고 노력하는 그것은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못하는 소경의 모습이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은 생명이 있는 사람, 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지, 성경을 읽고 그것을 쌓고 이루고 지켜내려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은 아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후서에서 말씀하시는 이전 신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교훈은 신앙의 변질이라기보다, 어쩌면 열매를 생명의 소산으로 보지 못하는 소경, 곧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없는 이들이 자기 본성을 좇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로 인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가 언급한 덕목들이 생명이 그 열매를 맺듯 생명에 이끌리는 삶을 살 것이며, 또한 열매를 열매로, 생명을 생명으로 보는 소경 아닌 자이기에 베드로 사도의 경계의 말씀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나오는 열매로 인하여 흡족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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