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1-11) 부르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후서 Date : 2018. 11. 19. 07:00 Writer : 김홍덕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를 시작하면서 ‘부르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3)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부르심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부르심과는 좀 다르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부르심은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부르신 자를 알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라는 것과 그 부르심을 받았다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아서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생명과 경건에 대하여 아직도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로 아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부르심이 온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부르신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임을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다.


누군가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특정인을 부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부르는 사람은 부르는 대상을 알고 있기에 부르고, 부름을 듣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기에 대답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동명이인이라서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이내 부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부르심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온전한 부르심이 되려는 부르시는 하나님과 부르심을 받는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온전한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심에 있어 사람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을 모르실 리가 없다. 요한복음 1장에는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가 있다. 그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묻고,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심에서만 봐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문제가 없다.


따라서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인가가 핵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온전한 부르심이 되려면 사람인 우리가 부르신 이에 대하여 온전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 역시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는가?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는 있겠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별로 없는데,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아는 것은 아주 잘 안다고 해도 머리로 아는 것 이상은 아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신기한 능력과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착각에 가깝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안다면 신학과 같은 학문도 좋은 시설도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기한 능력으로 다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치적으로 생각해도 사도들의 복음이 신학 이전에 있었고, 오천 명을 먹일 때 앰프와 같은 음향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지신 의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으니 그 만드신 목적 있을 것이니 그것을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나를 조성하신 이유를 알아야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상식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이유, 곧 자신에게 삶을 주신 이유보다 무엇을 바라시는지를 알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어두움이고 무지함이다..


따라서 부르심이란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 사람을 만드신 목적 그것이다. 사람을 만드실 때 가지신 창조목적과 그 의도하심(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이 사람을 향하신 부르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씀이라고 들려서 답을 할 때에 그 부르심이 온전한 부르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에 답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부르시는 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말씀하시고 설명하시고 가르치시며 교훈하시는 것이니 그것을 자기를 부르는 소리로 듣고 답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순종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 순종이 있다면 베드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되고, 답하는 순간 그것을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 사도가 또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르심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부르심이 자신에게 있었는가 알고 싶다면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될 것이다. 가 스스로의 질문 앞에 확신이 없다면 미안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을 부인하면 그것이 바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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