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는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육신으로 표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육신이라는 소비재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에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나심과 같은 것이다.


또한 신의 성품의 참예한다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가진 존재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이셨기에 the Christ가 되시고, 그 예수님을 보고 자기 삶이 또한 그것임을 순종하고 그렇게 살게 되면 그것이 그리스도(a christ)인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경건한 것이다. 삶이 하나님의 성품과 의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고 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경건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육신으로 하나님의 이미지(형상)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고, 우리 삶의 본질적 목적인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육신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바로 아들이다. 아들이란 아버지의 의가 육신을 가진 존재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그 사람의 육신으로 나타나서 그 육신의 삶을 보니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그런 존재가 아들인 것이다.


이 모든 신의 성품에 참예한 것의 본질을 예수님께서 보이셨을 뿐 아니라 그 보이심을 통하여 그것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그것은 자신의 운명으로 순종하게 될 때 그 사람도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진 생명 있는 존재가 되어 경건한 삶을 살게 하시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성품 곧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생명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그 안에 이루어졌다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보실 때 생명이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이 의가 보이는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니 아들이며, 사람들이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중에 그것을 구하시니 메시아요 그리스도이며,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면서 살기에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암묵적 생각과 같이 남다른 능력을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품을 나타낸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신비한 능력을 행한다거나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자로 착각하고 사람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권세를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더더욱 그 권위가 신학이란 공부를 하고 시험치고 수련해서 딴 자격증과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히 예수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은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에 기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의 모든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한다는 것은 방언을 한다거나, 병자를 고친다거나, 대학원을 갈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를 기도해서 알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경을 공부했다는 것이 마치 성경이 어떤 권능을 부여한 것으로 치장하여 높은 곳에서 사람을 가르치듯 권위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성공한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의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가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이 바로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세상의 법과 가치관으로 볼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없는 모습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니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내린 판결에 순종한 사건이다. 그것이 십자가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 더 높고 좋은 자리로 가는 것을 도우시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외쳤을 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여 죄인이 되는 것을 자기 운명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십자가 사건의 본질이고 그것이 육신을 가진 사람의 운명인 것이다.


바로 그 운명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버리고 그 운명에 순종하신 십자가에 달리시니 사람들이 비로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크고 화려한 교회나 좋은 학위나 세상에서 큰 성공을 하나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변화산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에서도 드러난다. 엘리야도 모세도 있는 것이 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베드로 사도가 이제 곧 순교를 앞두고서 예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십자가 그것으로 족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면 족한 것이지 그 외에 무엇을 더하고 세상이 능력이라 여기는 것을 가져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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