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사도가 이제 순교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자신의 신앙고백을 겸하여 그리스도가 온전함을 아주 함축적이고 간략하게 쓴 서신이다. 따라서 이 서신은 1장 1절의 수신자에게 밝히는 바와 같이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하는 서신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형제들에게 쓴 서신이다.


베드로후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이전 신앙으로 회귀하려는 사람과 그것을 부축이거나 빌미를 제공하는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들이 부인하려 애쓰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육신의 안목이 아닌 성령의 안목으로 이를 봐야 한다는 것을 전하여 함에 있다고 줄일 수 있다.


그러한 내용은 사실 베드로 사도나 바울 사도와 같은 대사도들이 죽음을 앞두고 적은 편지의 내용으로서는 아주 작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본다면 이 짧은 서신에 있는 몇 가지 주제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생각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베드로후서는 마치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공부한 것을 시험장에서 보기 위해 요약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 사도는 이 두 번째 서신에서 특히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변화산 사건을 경험한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영광 속에서 들은 것이 확실한 예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모든 예언의 근간이며, 이것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것이 바로 예언을 사사로이 풀이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론이지만 잠깐 이야기 해 본다면 흔히들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된다는 것을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야 풀 수 있다는 말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정말로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발상이다. 그 이유는 이 블로그 전반에 많이 녹아 있지만 우선 단 하나, 이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이라는 그 하나만 알아도 그런 멍청한 소리는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란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사사로이 예언을 풀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점을 벗어나서 성경을 보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변화산 사건을 알면 이해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예수와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과 개념이 사뭇 다르다. 사람들이 믿는 예수는 인생의 곤고함을 이기게 하는 예수며, 기도라는 행위와 성경을 보는 행위와 전도하는 행위의 공로로 은혜를 갚는 예수며 그 공로를 보고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를 믿는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다른 사람은커녕 자기 자신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분이시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고, 지금 사람들이 믿는 예수는 사업 잘 되게 해주는 예수요, 기도하여 병을 낫게 하는 예수며, 신학을 공부해야 더 잘 알 수 있는 예수다. 이는 남과 북이 먼 것과 같이 전혀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다른 예수를 믿으면서 성경을 보고, 학문으로 만들어 공부하고, 그것으로 밥 벌어 먹듯이 설교하는 이 모든 것이 다 사사로이 예언을 대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예수에 대하여 또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는 차차 다루기로 한다)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자가 거짓 선생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는 그 관점,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가 육신으로 얻은 가치관이나 신학과 같은 학문으로 재림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때를 논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옛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재림의 본질과 때를 알지 못하는 것임을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