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가 되는 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지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사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생명이 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본성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인 세상적인 이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 하는 일이 잘 된다는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세상에서 흉악한 죄인들이 처형되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살면서 하는 일이 잘 안되면 교회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정체성과는 반대의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인 자신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법을 저질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부자가 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정말로 바보 중의 상 바보들의 생각입니다. 방법만 다르지 성공을 바라는 것에서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더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정직하고 도덕적이라며,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믿기에 그렇다면서 세상에서 하는 짓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니 ‘개독교’라고 욕을 먹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현재의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에 있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더 정직하고 성실하며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모르는 것입니다. 구원이나 거듭남은 물론이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과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무례함이 더해진 죄인들일 뿐입니다.


베드로전서 2-3장에 이어지는 ‘고난’은 남들은 반칙하는데 교회에 다니니까, 예수 믿으니까 반칙하지 않고 돌아서 가느라 수고하는 고난과 같은 저급한 것이 아닙니다. 이 고난은 의로운데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심(벧전 3:18)과 같은 것이 바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고난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남들처럼 쉽게 가지 않기에 겪는 고난이 아니라, 남들이 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의로움과 이긴 것으로 여길 때에 반대로 낮아지는 삶을 가는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고 지금의 교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기에 돌이켜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보이신 것과 반대로 가면서 자신들이 예수를 잘 믿는 줄 알고, 죽으면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진리라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신앙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의 의에 대한 절대적인 존재인데, 그 의에 도전하는 죄악 중에 있는 자들의 주장에 이끌려서 십자가에 처형되시는 것까지 순종하셨는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믿는 신앙에 대하여 도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탄의 아들이라며 대항하면서 그것이 주를 위한 것이라고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자기 의조차 내려놓는 것인데,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놓아도 하나님에 대한 의는 내려놓지 못하는, 아니 내려놓으면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그것에 대항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때문에 예외 없는 법칙이 존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의는 내려놓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의를 믿는다는 그것마저 내려놓아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본체이시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손상되는 것인데 그것에 순종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고, 이 블로그에서 지속적으로 말씀드리는 것, 십자가의 도는 의인이 죄인을 위하여 죄인이 되는 세계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기 믿음마저 내려놓고서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자기 육신을 내어 주는 것이 진정한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기 육신을 내어 준다는 것은 단순히 휴지를 한 번 줍는 것 같은 수고에서부터 육신의 목숨을 드리는 것까지의 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한 생명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그 생명을 가졌으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할 수 있을 것이고, 생명을 가지지 못했다면 때로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기도 하나 생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지키려 한 자기 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