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3-17) 하나님의 종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3. 24. 09:25 Writer : 김홍덕

성경은 성도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아들과는 신분이 전혀 다르고 반대에 가까운 종이라고도 합니다. 아들은 자유한 존재이고 종은 자유하지 않습니다. 또 때로는 우리가 죄의 종, 세상의 종이었는데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우리 정체성에 관한 신분입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본성이 되는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품을 그 육신으로 표현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그 지음 받은 목적대로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란 아버지의 유전자가 본성이 되어 아버지의 혈통 곧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목적 아래서 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줍니다. 그 신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대로 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좇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삶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을 좇아 살기에 목적에 대하여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심은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부르심이고, 우리를 또한 종이라고 하심은 하나님이 아들 삼으신 그 존재의 목적을 좇아 그것을 이루고 나타내려 살아가는 삶을 살기에 그 목적에 대하여 종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고로 이것은 같은 것인데 정체성의 입장에서 보는지, 아니면 목적의 각도에서 보는지의 차이일 뿐인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존재의 목적과 인간 정체성에 대한 밝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말 그대로 아들이 종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들이 가진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자유함이 있기에 그 자유함으로 종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종은 아들과 같이 살겠다고 선택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아들이 가진 자유와 권세로 종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이 땅에서 죄인들 앞에서 오히려 죄인이 되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천군을 불러 물리 칠 수 없겠느냐?’는 말씀과 같이 얼마든지 하나님 아들이란 권세로 의로운 하나님 아들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이들을 물리치고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권세보다 더 강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하나님 아들이라는 생명의 본성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이란 본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 자기 안에 생명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 본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의 권세도 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유를 좇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본성을 좇아 하나님 아들이라는 더 없는 자유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종이 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의를 전하는 베드로 사도가 자유로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더욱이 베드로 사도가 전하고 있는 자유로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것은 결국 선택이 아니라 그런 본성을 가진 존재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어 그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보다 더 강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본성을 가진다면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받은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지킬 수 있고, 어떤 때는 또 지키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하나님의 종과 같이 된다는 것은 의지로 선택하는 일반적이고 세상적인 패러다임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자기 생명이 된 존재가 되라는 함축적이고 원론적인 말씀입니다. 인생이 가진 자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종과 같이 되는 본성을 가진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생이 가진 자유를 포함하여 인생의 존재 자체의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그 목적과 의미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본성이 되는 거듭남이 없으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이면 자유한 것이고, 그 본성은 하나님의 종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말씀과 같은 권면을 듣고서 하나님의 종과 같이 살아보겠다고 마음먹고 시도했다가 때로 실패하고 되지 않아서 교회에 가서 말씀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울며 회개하고 또 성경공부 시간에 나눔 한다며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그러고 있다면 자유한 생명도 아니고 그 자유로 하나님의 종과 같이 살아가는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시도 대비 성공률 따지는 것이 아니라, 0 아니면 1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이거나 아니거나 한 것이지 교회에선 생명이고 세상에 가면 생명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개가 땅에서는 개고 물에 빠지면 상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생명도 같은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유를 가진 자로, 또 그 자유가 가진 본성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종과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지 행동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신학교를 간다거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난리를 떠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공부하라고 주신 것이라 여기고 하나님 일에 대한 출사표나 행동 지침으로 보는 행위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나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생명이 가진 본성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좇아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또 많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 것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권면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이기에 그 세계의 법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말씀을 지키려 하고 또 하나님의 종으로 살려고 한다면 신학교 가겠다고, 또 하나님을 위하여 죽을 테니 선교지로 보내 달라고 떼 쓸 일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의 종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뜻을 알고 그 뜻이 자기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자기 육신과 본성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삶을 살다보니 먼 곳으로 가게 되면 어디가도 같은 생명이니 그 곳에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하여 이렇듯 분명한 이해와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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