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에게 자유롭지만 그 자유로 자신의 악을 감추는 것에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 악을 가린다는 것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악하다고 하시는 것은 오직 자신이 스스로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며 그 결정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창조주로서 사람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것을 사람에게 부여하시고 기대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로봇이나 아바타처럼 사람이 그 목적대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시고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고 순종하기를 바라셨기에 자기 운명에 대한 순종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에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삽니다. 그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선택이란 그에 앞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즉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아주 어려운 문제 같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사람은 자기 모습과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잘 보이지 않고 또 보여도 쉽게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정당화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로 악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은 항상 고상한 모습을 띱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선택에 대하여 존중해야 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에게 있어 가장 온전한 가치는 존재의 목적 안에 있을 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의 자리를 벗어나면 천덕꾸러기가 될 뿐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는 상실합니다. 칼이 부엌에 있지 않고 아이들 장난감 통에 있다면 그것은 가치 상실을 넘어 위험과 악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존재 역시 가장 가치 있는 모습은 다름이 아니라 그 존재의 목적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려면, 즉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자유로 자기 삶의 목적으로 선택하려면 가장 먼저 있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창조주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선택과 의가 선의 기준이라는 것에 순종하고 자신의 삶과 선택 역시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선한 것으로 아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의 세계가 되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자기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와 뜻을 자신의 의로움으로 순종하면 너무 논리적이고 알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자기 의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힘든 것입니다. 그것이 힘든 이유 중에는 바로 사람은 자기가 자기 뜻대로 행하는 자유가 가져다주는 맛을 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그래서 먹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인생이 자기 맘대로 되었을 때 스스로 얼마나 영광스럽게 여기는지. 그것이 세상에서 선하게 여기는 일이든, 심지어 세상에서 조차 악하게 여기는 일이라고 해도 자기가 뜻한 대로 되면 그렇게 만족합니다. 자기가 뭔가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모습을 바로 악에 빠진 것이라고, 죄악 중에서 행하는 것이며, 사망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존재 목적은 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면서 그럴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유라 여기며, 그렇게 이룬 것을 선하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베드로 사도가 자유로 악을 가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