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늘’은 사람의 모든 운명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도 하늘은 많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무래도 ‘주기도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눈으로 보기에 하늘이지 가신 곳이 우주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라는 정도는 이해가 되어야 성경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 몸이 우주로 사람 눈에 보이는 속도로 갔다면 아직 태양계 안일 것입니다. 그럼 천국이 태양계 안에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산소망에서 비롯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은 우리의 기업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에 두신 이유가 누가 훔쳐 갈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두신 것도 아니라 간직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는데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갈 수 없는 하늘에 기업을 간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기업을 두신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 되겠지만 하늘과 뜻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간직한 이 기업이 자신의 기업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보통 사람에게 운명을 가진 곳이라는 의미를 줍니다. 주기도문 포스트에서 많이 언급한 바와 같이 땅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맞춥니다. 하늘이 여름이 되면 땅도 여름이 되고, 하늘이 추워지면 땅도 추워집니다. 또한 비가 오면 땅은 비를 맞아 생명을 내고, 사람들은 우산을 씁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상태가 땅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하나님의 모든 것에 맞추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땅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다름이 아니라 땅의 모든 운명을 가진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은 당연히 썩지도 더럽지도 쇠하지도 않으며 좀 먹지 않는 곳입니다. 그 하늘의 뜻이 곧 자신의 운명인 사람에게 하늘의 기업은 그야말로 든든한 은행과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하나된 자, 곧 사람(the Man)의 모든 운명을 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그 삶의 내용이고 그 육신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형식인 존재는 하늘의 모든 기업이 다 자신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업을 간직하시듯 그 사람의 삶을 안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폰을 사서 애지중지하는 것 같이.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운명, 곧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과 삶의 의미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에 순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문안하는 ‘너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자신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하나남을 통하여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안부와 문안은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자신이 생각할 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도 자기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에 다니니까, 또 성경 읽고 찬송 부르며 기도하고 또 때로 성경에 이른 대로 선행하고 성경을 지키려 노력하는 삶을 살기에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사일 수는 있어도 순종은 아닙니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산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성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남’, ‘새 생명’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행위 규범의 신앙에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뜻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로 순종하는 것이 순종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하늘의 기업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은 가 옆에 가는 차 보다 앞서 가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것도 아닌데, 서로 지려 하지 않고 빨리 가려 하며, 끼워 들고 또 반대로 끼워주지 않으려 위험한 운전을 하고 더 나아가 보복 운전까지 합니다. 집을 나설 때 도로에서 만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운전 잘하는 것을 보이려 한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가려 했건만 그렇게 하듯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의 법에 의하여 경쟁하여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가 정하고 약속한 땅(자리)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잊고 오히려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영광이기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에는 하늘의 기업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이 없다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고 좋은 믿음의 열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전하러 지구 반대편에 갈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드리면서까지 보여주신 우리 인생의 목적, 이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에 가장 온전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의미인 것으로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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